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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894》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894》

En Hakkore 2024. 8. 8. 15:01

부활하신 그리스도(요 20:1-10)

"(제자들에게)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이 구절을 통해서 사랑은 믿음으로 조정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마리아의 구세주에 대한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으며, 그리고 지극히 복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믿음이 행사되지 아니하였다.

그녀는 육안으로 판단하였다. 돌이 옮겨져 있음을 보자 그녀는 즉시 누군가가 거기에 있다가 구세주의 시체를 "가져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녀에게는 구세주께서 지금 살아 있다는 생각이 결코 떠오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아직도 죽음의 세력 아래 있다고 생각하였다.

구세주께서 친히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거듭 선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말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슬프게도 우리 중 가장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가르침을 듣고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상하게도 영적 지식과 영적 무지가 혼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주를 가져갔나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이와 같은 혼란을 겪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라고 말한 점에 주목하라. 그것은 다른 여자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무덤에 갔다고 말한 마태의 설명과 일치한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20:3).

마리아가 그들에게 알린 사실은 너무 놀라운 것이어서 두 제자는 즉시 일어나 마리아의 무덤에서 돌이 옮겨졌다는 말이 도대체 어찌된 것인지 알아보려고 출발하였다.

그들은 아마 처음에 마리아에게 시체가 없어진 것을 확실히 보았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입구에 돌이 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리아가 무덤 안을 실제로 들여다본 것이 아님을 알고 그들은 직접 가서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지배하시는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모세의 법에 따르면 여자는 증언을 할 수 없다(고린도전서 15장에 여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음에 주목하라!). 그리고 진실은 최소한 두 명의 증인이 있어야 확정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빈 무덤과 구세주께서 벗어 두신 세마포가 가지런히 개어 있는 광경에 대한 증인으로서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이 나타나 있다.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다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20:4).

그들이 달려갔다는 사실은 그들의 흥분이 대단하였고 걱정이 컸음을 입증해 준다.

"우리는 마리아가 가져온 갑작스러운 소식이 그들을 완전히 압도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혼란에 빠지게 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은 달려가면서 주님께서 자신이 부활하시리라고 반복하여 예언하셨던 것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깊은 슬픔이 모두 기쁨으로 바뀌게 되리라는 말씀이 과연 사실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자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우 위급한 순간이었으므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쳤을 것이다"(라일 주교).

요한이 베드로보다 앞질러 갈 만한 신체적인 이유가 특별히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요한이 이 사건 이후로 60여 년을 더 산 것으로 보아 그가 베드로보다 젊었기 때문에 앞질러 달려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통념이 옳은 것 같다

다른 한편 영적 이유에 관하여 생각해 볼 때, 혹자는 베드로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구세주를 만나게 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에 요한보다 늦게 갔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베드로는 무덤을 향해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며 더욱이 달려가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체하지 않고 무덤에 들어간 사실을 볼 때 그 견해는 전혀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해 기록하신 이 세부 사항에 도덕적인 의미가 있음은 의심할 나이가 없다. 베드로는 구세주와의 친교를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한은 주님과 가장 친밀하게 지낸 열한 사도 중 하나였다. 이것으로써 요한이 무덤을 향한 사랑의 경주에서 이긴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다.♡

Another W. Pink  요한복음 p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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