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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890》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890》

En Hakkore 2024. 8. 7. 11:02

부활하신 그리스도(요 20:1-10)

요한복음 20장 첫 부분을 아래와 같이 분석해 본다.

1. 무덤을 막았던 돌이 옮겨짐(1절)
2. 막달라 마리아가 두 제자에게 그 사실을 알림(2절)
3. 제자들이 사랑에 넘쳐 무덤으로 달려감(3,4절)
4. 요한의 망설임과 베드로의 담대함(5,6절)
5. 요한이 세마포를 보고 내린 결론(7,8절)
6. 우둔한 제자들(9절)
7. 그들이 집으로 돌아옴(10절)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최초의 약속과 예언에 분명히 암시되어 있다(창 3:15). 원수가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후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려면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했다.♡

노아의 방주가 심판의 홍수를 견디고 깨끗해진 땅에 이른 것은 위와 같은 대사건을 전조한 것이다(벧전 3:21). 이삭이 죽음에 넘겨진 후 사흘 만에 제단에서 구원된 것(창 22:4)에 대하여 성령께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을 것이라고(히 11:19) 비유하여 해석하신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양을 죽인 후 사흘 만에 갈라진 홍해의 마른 땅을 밟고 건넌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상징한다.

요나가 삼 주야만에 물고기의 뱃속에서 탈출한 것은 구세주께서 사흘 만에 무덤에서 구출되신 것을 예표한다. 이렇게 그 사실은 예언을 통해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9-11).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그것은 지나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부활하심을 너무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가 십자가를 아무리 자주 묵상한다 해도 그것은 지나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구세주의 수난을 묵상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 수난 뒤에 온 영광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골고다 사건으로 인하여 복음의 메시지가 다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복음이란,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그것이며, 뿐만아니라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것이다(고전15;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롬 4:25).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셨다면 우리의 모든 소망도 무덤에 묻혀 있었을 것이다.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전 15:14)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사도의 기본적 자격 요건이었다 (행 1:22).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자를 살리신 것이, 곧 베드로가 오순절 설교에서 강조한 중심적인 진리였다(행 2:24-36). 또한 사도들도 솔로몬 행각과(행 3:15) 산헤드린 앞에서(행 4:10; 5:30) 똑같은 사실을 재강조하였다.

이 근본적인 진리는 이방인들에게도 선포되었다(행 10:40; 13:34). 서신서들에도 이 진리가 두드러지게 강조되어 있는데 이것은 특별히 인용되지 않더라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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