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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886》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886》

En Hakkore 2024. 8. 7. 11:00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요 19:25-4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19:32).

군인들은 어째서 두 행악자들에게 먼저 주의를 기울였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가 죽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꺾다"는 말의 헬라 원어는 "산산조각으로 부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무거운 나무 막대기나 쇠막대기가 사용되었다. 라일 주교는 이 구절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 회개한 행악자는 개심한 후에도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죄의 용서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에게서 다리가 꺾이는 고통을 덜어 주지는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일하시되 육체적인 고통과 최후의 원수(곧 죽음)와의 투쟁을 없애는 일을 맡고 계시지는 않는다. 회개한 자도 회개하지 아니한 자와 마찬가지로(구세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죽음을 맛보아야 한다."

이 로마 군인들은 그리스도의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약속을 성취시킨 무의식적인 대행자였는데 그것을 아는 것은 복된 일이다.♡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19:33).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독특하다는 것을 더 확고하게 입증해 준다. 주 예수와 두 행악자는 동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었다. 또한 그들은 같은 시간 동안 각자의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저녁 무렵까지 그 두 행악자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잘 알듯이 십자가형은 지독히 고통 스러우면서 일반적으로 수난자를 서서히 죽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생명이 있는 육체는 금방 죽지 아니한다. 때때로 수난자의 생명이 다 소진되기 까지는 이삼 일이 걸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린 지 여섯 시간 후에 죽으신 것은 보통 있는 일이 아니었다.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겼다"(막 15:44).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한 요구를 볼 때 그들은 그 세 사람을 서둘러 죽이지 아니하면 그들이 빨리 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음을 알 수 있다. 군인들이 왔을 때 두 행악자는 여전히 살아 있는데 구세주께서는 이미 죽어 있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통해 그의 생명이 "그에게서 데려가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다"는 확고한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군인들이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참으로 죽으셨다는 최초의 증거이다. 이 로마 군인들은 노련한 사형집행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런 문제에서 실수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빌라도는 그 세 사람의 다리를 꺾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하지 않고 그들은 감히 빌라도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가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기절해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극도의 어리석음을 그들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 군인들이 그들의 의견을 반증해 주는 증인들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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