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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885》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885》

En Hakkore 2024. 8. 7. 11:00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 (요 19:25-42)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19:30).

이 동작의 순서는 구세주의 독특성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영혼이 먼저 떠나고 그 다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그런데 그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이 동작들은 각각 그의 신성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그는  "머리를 숙이셨다" 이것은 그가 그 때까지 머리를 똑바로 들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기절한 채 매달려 있는 허약한 수난자가 아니었음을 다타낸다.♡

그랬더라면 그는 머리를 가슴 위에 힘 없이 축 늘어뜨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머리를 "숙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동사를 잘 살펴보라. 그의 머리가 "앞으로 뚝 떨어졌다"고 되어 있지 않고 의식적으로, 고요하게 그리고 경건하게 숙이셨다고 되어 있다.

그의 몸가짐은 "십자가" 상에서조차도 대단히 숭고하였다! 그는 아주 훌륭한 침착성을 나타내셨다! 백부장으로 하여금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 라고 외치게 한 것도 바로 그의 십자가 상에서의 이러한 위엄 있는 태도가 아니었겠는가!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아무도 이렇게 한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그렇게 죽은 사람이 없다. 이 말은 10:17, 18에서 주님 자신이 하신 선포를 예증해 준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주님의 말씀과 스데반의 말을 대조시켜 보면 우리는 여기에서의 그리스도의 행동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는 죽으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라고 기도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영혼을 버리셨다." 그것은 스데반의 경우와 뚜렷이 대조가 된다. 스데반의 영혼은 그에게서 데려가졌다. 그러나 구세주의 영혼은 그렇지 않았다.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을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19:31).

구세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큰 날" 이었다. 그 날은 정규적인 안식일 전날이었으며  또한 무교절 바로 전날이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그 날부터 칠주간 후를 오순절로 지내고 있었다. 또 그 날은 새로운 곡물들을 내어 제물로 바치도록 정해진 날이었다.

그러므로 그 날은 삼중의 엄숙성을 지닌 날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이렇게 절박해 진 것은 당연하였다. 그들은 서둘러 죽게 하고 또 그 죽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다리를 뿌려뜨렸다.

우리는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는 "유대인들" (신 21:22, 23)의 동기와 행동의 이면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지배하시는 손길을 찿아볼 수 있다. 빌라도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며칠 동안 그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는 자신이 "묻힐" 것이며 그리고 사흘간 무덤에 있을 것이라고 선포하셨었다. 이것이 성취되기 위하여 그는 죽으신 바로 그 날 묻히셔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도록 조치하셨다.

주 예수의 원수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계획들을 무의식적으로 집행한 것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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