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The Life of David159] 정복2(사무엘하 8장) 본문
지금 누리는 영원한 유업
신자들은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고도 놀라운 그들의 몫을 갖고 있다. 그 몫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
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놀라운 선언에도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선언들에 실제적으로 공감하지 않고, 그것들에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는다. 마치 우리는 자신에게 아주 값진 재산이 남겨졌음을 알지 못한 채 가난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과도 같다.
우리는 위에 있는 것들에만 마음을 두고서 마치 우리가 죽음의 문을 통과하기 전까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라는 말씀은 미래에만 아니라 현재에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이 그의 영원한 유업을 현재에도 즐기며 사는 것과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굉장한 차이를 낳는다.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사는 이에게 이 세상의 매력적인 것들이 무슨 힘을 쓸 수 있겠는가? 전혀 쓰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그것들을 참된 빛 안에서 바라본다.💕
그에게 그것들은 무가치한 허접쓰레기들에 불과하다. 그는 몇 가지 세속적인 것들을 잃는다 해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는 그것들을 자신의 보화나 중요한 재산으로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설령 그가 그것들을 잃는다 해도, 그의 평안이 파괴되거나 그의 기쁨이 사라지지 않는다.
"너희가...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원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히 10:34).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갖고 있다면, 고난이나 고통도 우리가 계속해서 의무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가로막지 못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유업을 현재에도 즐기기 위해서는 믿음이 작동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가시성(可視性)과 가촉성(可觸性)을 제공한다. 믿음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에 실제성(實際性)을 제공한다. 믿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가까이 끌어온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을 시간과 감각에 속한 것들 위로 들어올린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상 주심"은 모세에게는 생생한 실제였다. 그러므로 그가 "상 주심"이라는 고양시키는 힘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한, 애굽의 공주가 제공하는 매혹적인 제안들은 그를 밑으로 끌어내릴 수 없었다.
아, 사랑하는이여, 만약 실제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빌 3:20) 있다면,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의 미끼들은 우리에게 불쾌한 것이 될 것이다.🌱
선행 조건
그러나, 앞 장에서 지적했듯이, 우리가 "죽임"(육신의 정욕을 물리치는 일-역주)을 무시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육신과 세상적 욕망의 유혹에 굴복한다면, 만약 우리가 그 어떤 악이라도 허용한다면, 그때 우리의 믿음은 질식될 것이고 우리는 수동적인 상태에 빠질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을 동시에 점유할 수 없었던 것처럼 - 그들 중 어느 한쭉은 다른 쪽에게 그 땅에 대한 점유권을 넘겨주어야 했다 - 믿음과 죄 역시 사람의 마음을 동시에 차지할 수 없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을 때, 그 땅은 이미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점유된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원래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죄로 가득 찬 정욕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서 그것들을 털어내고 그 빈자리를 하늘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거친 싸움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들을 정복해야 했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죽여야 한다. 정원에 채소와 꽃을 심으려면 먼저 그 안에 있는 잡초와 쓰레기를 깨끗이 치워야 한다. 그렇기에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라"(사 16-17).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시 34:14).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암 5:15). 전자가 수행되기 전까지는 후자가 이루어질 수 없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 24).
이것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명령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려면, 우리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후 7:1).🌱
오바댜 17절 말씀의 순서는 얼마나 교훈적이며 얼마나 놀라운가! "오직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첫째, 구원은 시온 산에 있다.
시온 산은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다(시편 2편 6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선포하신다). 죄에 시달리는 신자들이 그들의 평안과 기쁨과 유용성을 파괴하려는 적들로부터 구원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둘째, 구원 다음에 거룩에 대한 약속이 나온다.
거룩은 적극적인 요소로서 순결이라는 도덕적 자질을 가리키는데, 거기에는 또한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라는 추가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구원"보다 앞설 수 없음을 주목하라!
셋째, 다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기업을 누리리라"는 보장, 즉 그들이 그 기업을 실제로 즐기며 그로 인해 힘을 쓰며 살아가리라는 확실한 약속이 나타난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202
'강해시리즈 > 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Life of David161] 정복2(사무엘하 8장) (0) | 2024.02.26 |
---|---|
[The Life of David160] 정복2(사무엘하 8장) (0) | 2024.02.26 |
[The Life of David158] 정복2(사무엘하 8장) (0) | 2024.02.26 |
[The Life of David157] 정복1(사무엘하 8장) (0) | 2024.02.26 |
[The Life of David156] 정복1(사무엘하 8장) (0) | 2024.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