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John879》 본문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요 19:25-42)
"보소서, 당신의 아들이니이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아들"이 아니니이다. 이것은 여기에서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하여 언급된 것이 아니라는 주목할 만한 증거이다.
신약 성경에서 그녀가 언급된 것은 사도행전 1:14에서 뿐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녀가 기도하러 모인 신자들 가운데(그들보다 높은 데가 아니라)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 주심께서는 그의 인간적인 사랑을 버리신다. 그는 십자가 곁에 서 있는 그의 모친과 사랑하는 제자를 보신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를 제자에게 맡기시기 위함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가 전에 그들 가운데서 차지하고 있던 위치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신 것이다. 우리는 그가 사랑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한 최후의 순간까지 그 사랑을 신실하게 간직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자기 자신의 슬픔조차도 그로 하여금 그 사랑을 망각하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항상 그 사랑에 집착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활의 자녀들'은 결혼하지 아니하며 또한 결혼 상태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이제 다른 개념으로 그들에게 자기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주셔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후로부터는 '한 영'으로 그와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것이 바로 그의 복되신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로부터 멀리 떠나가시되 우리를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좀 더 친밀한 사랑과 좀 더 밀접한 관심 안에서 그와 결합되게 하기 위함일 따름이다" (Mr. J. G. Bellet).
"또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19:27).
그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분의 곁에 서 있는 그 제자였다. 우리는 마태복음 26:56에서 열 한 사도들에 관하여 "그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다"는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예언, 즉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 26:31) 하신 말씀이 응해진 것이었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수치스럽게 여기다"라는 뜻이다. 그들은 주님의 일행으로 발각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그가 죽으시기 전에 한 사도가 그의 곁으로 돌아왔음을 아는 것은 매우 복된 일이다.
그러면 그는 어떤 사도였을까? 그 적은 무리 중의 어떤 사도가 최상의 사랑을 나타내었을까? 이 기록자가 그 정체를 은밀하게 감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성경은 그것이 이 넷째 복음서의 저자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 사실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숨겨져 있지만 명백하다는 많은 증거들 중의 하나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