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John871》 본문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 표현은 구세주의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과 관련하여 두 번 사용되었으며(19:13,17), 그 밖의 예로서는 요한복음 5:2에서 유일하게 발견된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좋은 대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의 골고다에서는 그들의 잔인무도함을 본다!
누가는 이방인의 명칭인 "갈보리(해골)"(23:33) 라고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히브리인인 요한은 구세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를 "골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의 재판석이 있는 곳에 관한 두 개의 이름을 비교해 보라(19:13).
"이중의 명칭으로 표현된 이 예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기 백성들과 함께 사용하신 말씀에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며, 인간은 세상의 말로 자기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 죽음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성령께서 기록하신 모든 말씀에는 그 이유가 있다"(Mr. M. Taylor).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19:18).
이 한 구절은 최소한 구약의 세 개의 예언을 성취시기고 있다.
첫째로. 구세주께서 죽으신 방식이 분명하게 전조된 바 있다. 이 일이 있기 수 천년 전에 그는 예언의 성령을 통하여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시 22:16)라고 부르짖으셨었다.
이것은 실로 지극히 주목될 만한 일이다. 유대의 주요한 형벌의 양식은 돌을 던져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긋날 리가 없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죄인들에게만 행하는 로마의 사형 집행 양식이었다.
둘째로, 이사야가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53:12)라고 선포한 바 있다. 유대인들의 목적은 주님께 최종적인 모욕과 무례를 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를 단지 세상의 찌꺼기 같이 여긴다는 공공연한 선포였다.
그들은 그들의 악의를 드러낸 이 표현이 메시야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하였다.
셋째로, 그는 "죽으실 때 악한 자들과 함께 되었어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사 53:9,글자 그대로 번역한 것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그토록 포악하게 다루어지도록 허용하신 것일까?
그것은 그의 아들이 취하신 신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우리 죄로 인하여 마땅히 우리가 받아야 할 신분이었다. 즉 수치와 정죄와 형벌의 신분이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두 행악자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것은 그가 자기 목숨을 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기적, 즉 주권적 은혜의 기적을 행하시도록 그에게 기회가 부여된 것이다. 누가복음 23:39~43을 신중하게 숙고하면 그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가운데 십자가에 계신 분께서는 위난으로부터 한 사람을 구원하심으로써, 즉 바로 이 행악자 중의 하나를 자기의 충족한 희생에 의한 피로써 지옥으로부터 천국에로 옮겨 놓으심으로써 자신이 구세주이심을 분명하게 나타내신 것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