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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331]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331]

En Hakkore 2024. 8. 5. 16:10

참된 신앙고백 8(마 7:21-27)

스펄전은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즉 "당신의 믿음이 참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는 시험될 것이다. 그것이 알곡인지 쭉정이인지는 커다란 키가 타작마당에 모아 놓은 모든 것들 위로 바람을 일으킬 때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과 교제해 왔으면 당신은 '소멸하는 불' 을 견디어 낼 것이다. 당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인지는, 즉 당신이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나아갔는지 아닌지는, 은을 시험하듯이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시험하실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당신도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려면 당신에게서 심판이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을 모두 다 시험하고 입증하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고 시험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을 데려다가 모리아 산상에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창 22장).

욥의 믿음과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욥과 그의 생명을 제외한 모든 소유물을 사탄의 손에 넘겼다.

바벨론의 사신이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서 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물으려고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시험하고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주시려고 그를 떠나셨다(대하 32:31).

'집' 이라는 이 시험을 죽음의 시간이나 심판의 날에 해당되는 것으로만 제한시켜 이해하는 사람의 견해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위에서 고찰한 것들로 미루어보아 분명할 것이다.

죽을 때에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전 12:7)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 그것은 천국으로 들어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저주받은 자들이 사는 곳에 맡겨질 것이다.

장엄한 심판 날에는 신앙고백이 가치있는 것인지 무가치한 것인지가 온 우주 앞에서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구절 속에 있는 폭풍이라는 말이 최후의 시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제한시켜서 이해하는 것 이외의 아무런 뜻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와 반대로 한편으로는 참된 신앙고백과 공허한 신앙고백은 다양한 방식과 서로 다른 정도 면에서 이 세상의 삶 속에서도 시험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주는 내용이 성경에 많이 있다.

우리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다"(눅 22:31)고 선포하셨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이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금이 불에 연단을 받듯이 성도들의 믿음도 환난에 의해 시험되어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인 조건이다(벧전 1:7).

사도가 신도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벧전 4:12)고 말했을 때 그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겪게 될 경험, 즉  그 언어가 나타내고 있듯이 결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예를 들면, 정통파에 속하는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공연하게 고백하는 것은 항상 불명예와 치욕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의 가족은 그에게서 상속권을 박탈하고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렸으며, 모든 형제들이 보는 데에서 그는 '만물의 찌끼' 같이 여겨졌다.

추후 처음 2세기 동안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빈번하게 여러 가지 고난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즉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혔으며 사자에게 던져지거나, 최소한 '궁핍과 환난을 당하며' 동굴에서 살아야 하는 대가를 수반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세기 동안에 주님의 백성, 그리고 특히 그의 종들은 좀 더 교묘한 방법으로 시험하였다.

즉 그들은 불가지론의 과학자들과 소위 '현대학문' 의 이론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믿고 어리석은 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절망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비난을 받음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어왔다.

그런데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비난이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에 있어서의 시험이란, 매혹적인 세상의 유혹에 저항하고, 타협을 거부하는 데 있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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