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328]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328]

En Hakkore 2024. 8. 5. 16:08

참된 신앙고백 7(마 7:21-27)

넷째로, 진리를 단지 지적으로만 아는 것에 소망의 근거를 두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이다.♡

신학적인 지식은 동요하며 일시적인 것이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천적인 지식은 뿌리가 깊고 영원한 것이다. 타오르는 불길의 효과를 일단 한 번 체험하기만 하면 그 어떤 궤변적인 논설로도 그것이 해롭다고 나를 설득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주님의 자비하심을 일단 한 번 맛보기만 하면 아무도 그가 계시지 않다고 나를 확신시킬 수는 없다. 두 가지 지식 사이의 차이점은 결과에 있어서도 너무도 판이하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에게 제시한 증거와는 반대되는 신학적 지식을 가졌었다. 그러나 가이사와 관련하여 결과가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자(요 19:12) 그의 실제적인 판단은 자기의 위신을 세우는 쪽으로 내려졌다.

교훈에 대하여 신학적으로만 알고 있는 자는 그것에 대하여 말을 잘한다. 그러나 실천적인 지식을 가진 자라야만이 교훈을 따라 산다. 진리에 대하여 신학적인 지식을 가진 자는 진리를 칭송할 테지만, 실질적인 지식을 지닌 자는 진리를 위해 죽으려 할 것이다.

다섯째, 죄를 고백함에 있어서 '양심적' 이지 아니한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중생하지 못한 자와 중생한 자 사이에는 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 있고 죄를 단순히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아니한다. 그러나 후자에게 있어서 죄는 가장 무거운 짐이며 그러므로 주님께 그들의 죄를 다 고백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께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눅 11:4)라고 기도하도록 명령하셨다. 성경은 그들에게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니라"(잠 28:13)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계속하여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도다"(시 32:3, 5)라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비참한 타락을 한 후에 밖에 나가" 슬피 울었다." 로마서 7장의 후반부를 읽고 바울이 내재하는 타락 때문에 얼마나 통렬하게 괴로워하였는지 살펴보라.

믿는 자는 민감한 양심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 하나님께 신속히 죄를 고백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의 양심은 부패한 것이어서 죄에 대하여 슬퍼하지도 않고 고백하지도 않는다.

이제 요약해 보자.

비록 내가 그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혹은 나의 성품이 어떻고 나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든지 간에, 혹은 나의 확신이 얼마나 깊고 견고하든지 간에, 혹은 나의 재능이 제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게 실천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이끌지 않는다면 죽음이 우리에게 닥쳐왔을 때 그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내린 엄격한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내리신 결정이다. 즉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라."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말씀을 온전하게 실천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약 3:2).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실천해야 하고 변명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잘못을 슬퍼하며 고백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이 결함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 순종은 참되고 실제적인 것이다.

그것은 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것이다. 그것은 범사에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려는 참된 열망이며 결심이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노력이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를 노하시게 했을 때 가장 슬퍼하는 것이다.

주여,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시 119:35).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73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330]  (0) 2024.08.05
[산상수훈 329]  (0) 2024.08.05
[산상수훈 327]  (0) 2024.08.05
[산상수훈 326]  (0) 2024.08.05
[산상수훈 325]  (0) 202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