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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324]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324]

En Hakkore 2024. 8. 5. 16:05

참된 신앙고백 7(마 7:21-27)

바울이 취한 순서를 살펴보자.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 9)

그러므로 먼저 그리스도요, 그 다음이 그리스도의 의이다.

1. '깊이 파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앙고백을 성급하고 경솔하게 하지 않는 자이며, 대신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는' 사람이다(눅 14:28).♡

자기가 잃어버린 자라는 사실에 대하여 어떤 것을 깨닫기 이전에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왕 되심에 대한 주장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를 영접했다고 고백하는 자들도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 신분에 필요한 용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세례를 받으려고 나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성급하게 종교적인 신앙고백을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다시 성급하게 종교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그들은 죄에 대한 고통스런 자각과 더불어 말씀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기쁨'으로만 말씀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로지 "잠시 견딜 뿐이다"(마 13:20, 21).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라고 말하자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고 대답하셨다.

또 다른 사람이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라고 경솔하게 말했을 때에도 손에 쟁기를 잡고[그런데 쟁기질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대답하셨다(눅 9:58-62).

그리고 그의 사도듵에게도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경고하셨다(눅 17:32).

2. '깊이 파는' 사람은 독선과 자만심, 그리고 자기만족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죄인은 무엇보다도 그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그를 통치하는 왕으로서 기꺼이 영접할 마음을 주셔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주님 자신도 이 사실을 청중들에게 어떻게 강조하셨는지 살펴보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인간의 '자유의지' 를 그토록 소리높이 부르짖는 시대에 그것을 믿는 자가 누가 있는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무엇 때문에 힘을 얻기 위해 위대한 의사를 찾겠는가.

그리고 내가 더럽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깨끗함을 얻기 위해서 의사를 찾을 이유가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타고난 교만과 자기만족을 굴복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자비롭게 베푸시도록, 그리고 내 안에서 그에게 반대하여 일어나는 것들을 이기시도록 그와 더불어 영혼의 격렬한 싸움을 할 필요가 있다.

3. '깊이 파는' 사람은 진리에 대한 경험적이고 내적인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진리에 대하여 단순히 개념적이거나 신학적으로만 아는 것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는 진리가 그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의 '중심' 에 인식처를 마련하도록(시 51:6) 진리에 대하여 실천적인 지식을 가지려고 열망한다.

진리는 사야만 한다(잠 23:23).♡ 지혜로운 건축자는 필요한 값을 아주 기꺼이 치를 것이다.  즉 그것을 사기 위하여 세상적인 이익을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 그 점에 대하여 스펄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진리의 내적으로 역사하시는 체험을 추구한다. 그 진리가 네 안에서 불타오르도록 구하여라. 자유의지를 웅변적으로 주장하는 자들에게 동의하면서, 은혜의 교리를 추구하는 것을 단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통적인 신조를 부인하는 영리한 이론가들과 접촉하면서 정통적인 신조를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말씀이 그들의 마음 속에 굳게 새겨지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의 능력 안에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조를 아는 것과 진리를 마음의 돌판에 새기는 것과는 전연 별개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경험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점에서 실패한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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