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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65]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65]

En Hakkore 2024. 7. 31. 09:28

거짓 선지자들 2(마 7:15)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선한 행실은 구원, 즉 최종적이고 완전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것인가?

첫째로, 최종적 구원을 이루는 방법으로서 필요하다.

목적지를 향하여 여행함이 없이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는 것처럼, 좁은 문을 통하여 협착한 길을 밟지 않고서는 생명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즉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거룩한 길을 통과해야 한다.

둘째로, 선한 행실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수단들의 일부로서 필요하다. 즉 선한 행실은 영적 견인의 수단이다. 선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악한 일을 할 수 밖에 없으며, 악한 행실은 그 악행자를 죽인다. 즉 죄는 파괴적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롬 8:13; 갈 6:8 참조).

셋째로, 선한 행실은 완전한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 필요하다. 계약에 규정된 것과 같은 조건이 아니라 두 가지 일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서 필요하다는 뜻이다.

즉 육체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음식물을 먹어야 하고,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씨를 뿌려야 하는 것처럼,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와 믿음과 함께 순종이 선행해야 한다.

넷째로, 선한 행실은 믿음의 진실성에 대한 증거로서 필요하다. 즉 열매로서 나무를 증거해 주어야 한다.

어떠한 의미에서든 선한 행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상의 강도의 경우를 예를 들어, 그는 구주를 단순하고 단 한 번 믿음으로 의지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강도의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었다는 것(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즉시 천국으로 옮겨 주신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과 예외를 내세워 규칙을 정하는 것은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그러한 주장을 해결할 수 있다.

그 대신에, 우리는 그의 주장이 스스로 모순되고 있다는 것과 그의 확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강도에게는 단순히 구주를 바라보는 것 이상의 것이 있었다.

(1) 그는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눅 23:40)라고 그의 동료를 꾸짖었다.

(2) 그는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41절) 라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였다. 그는 자신이 당연히 죽음을 당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정죄하였다.

(3) 그는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공중 앞에 증거하였다.

(4) 적개심에 가득 찬 군중 앞에서 그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라고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왕 되심을 증거하였다.

맨턴(Manton)은 에베소서 2:10에 관한 그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선행이 하나님을 향한 첫 번째 회복이라고 한다면, 그 선행은 구원의 결과이다. 그러나 구원의 완성 또는 모든 악으로부터의 최종적인 구원을 생각해 볼때는 그 구원이 있기 전에 선행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어떤 공로적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순서상 그렇다는 것이다. 선행이 불필요 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선행을 하는 것과 그 선행의 유익함을 너무 경시하는 것이며,

또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선행이 마땅히 받을 만한 가치 이상의 것으로 너무 높이는 짓이 된다. 사도는 이 두 극단의 중용을 취하였다.

선한 행실은 필요하나 공로적인 것은 아니다. 선행은 영생에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이제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도록 하자: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약속해 주셨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하여 그것을 사셨다. 믿음으로 구원의 자격을 얻는다. 선한 행실은 구속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혜택을 실제로 얻을 수 있게 보장해 주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날마다 신자를 새롭게 해주신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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