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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62]

En Hakkore 2024. 7. 31. 09:25

거짓 선지자들 2(마 7:15)

"구원을 얻기 위하여 선한 행실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첫 번째 대답은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제 이를 부연설명해 보기로 하자.

아담의 후예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 넘치는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게 해주는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그가 이 세상을 창조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행실로써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없다.

그는 자선 행위로 말미암아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보다는 차라리 지존자께서 거하시는 처소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사다리를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타락하고 부패한 피조물로 들어오며 태아 때부터 그는 자기의 영혼의 옷을 더렵혀 왔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함이 없이 자기 옷의 얼룩을 깨끗이 하는 것보다는 에디오피아인의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 일을 더욱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생활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는 이전 생활의 얼룩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죄 없이 살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어제의 죄를 지우지는 못한다.

나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인데 그것을 갚을 동전 한 닢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나를 동정하여 값 없이 모든 것을 주시지 않는다면 내게는 소망이 전혀 없다.♡

독자들은 "그것이 바로 내가 믿는 바이다" 라고 말하면서 위 단락에 대하여 전심으로 동의를 표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은 여기에 덧붙여, 여기에 반대할 만한 더 나은 것을 제시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말하고, 그의 공평과 공의에 대해 논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 주님과 지상의 대부분의 군주와 권위자들 사이에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대조가 있다.

즉 그들은 부정적인 일을 하도록 매수당하거나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대우 하는 분이 아니다. 각 사람에게 마땅한 것을 주시며 언제나 옳은 일을 하신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자로서의 직분과 율법의 집행자로서의 직분에 속하는 일이라는 것을 지적해 두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주권자이시며, 그가 기뻐하는 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또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시면서 자기의 사랑을 나누어 주신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즉시 필자가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고 항의할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창조, 섭리, 은혜 안에 나타난 대로의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사랑에 대하여 즉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친절하심이 사방에 나타나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나 나는 하나님은 거룩하고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자기에게 계속 반항하는 자들을 영원한 불에 던질 것이라는 것을 지적해야만 한다. 만인구원론자들(universalist)은 즉시 "당신은 지금 모든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고 말할 것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도 똑같은 비난을 할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에베소서 2:8,9의 말씀이 아주 명확하고 단호하므로 그 말씀에 대하여 세밀히 조사해 볼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였었다. 요한복음 3:16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 내면서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구절구절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우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 말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을 얻었나니" 라는 말씀은 절대적인 진술로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씀으로 즉시 제한을 받는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 이상의 구원은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얻었나니' 라는 말이 이 구절에서 구원의 가장 넓은 범위의 의미로서 사용되지 않았음을 즉시 알 수 있다. 믿음 자체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구원' 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믿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지 않는다. 중생 또한 구원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중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거듭날 때, 즉 하나님께서 소생시키실 때에 믿음이 생기게 된다.♡

또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며 얻게 될 것이다" 가 아니라 "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을 얻었나니(are saved)" 라는 말로 제한되어 있음을 주목해 보라.

동사의 시제를 보면, 여기에서의 구원은 신자가 현재 즐기고 있는 구원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여기에서의 구원은 믿는 자의 장차의 영화와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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