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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50] 본문
구원의 길 1(마 7:13, 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 권고는 분명히 구원받지 아니한 자들에게 행해진 말씀이기 때문에 철저히 '회개' 하고 '믿음'을 가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말이다. '들어가라'는 이 말은 분명히 아직도 밖에 있는 자들을 가리켜 한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말씀하셨겠는가? 참 하나님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이교도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 물론 여호와를 믿고 하나님의 참 말씀인 성경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또한 "아버지의 한 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 8:41) 라고 증언한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그들의 진리에 대한 지식과 외적인 특권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생명에로 이끄는, 유일한 길로 가는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와 같은 권고는 오늘날 신앙을 고백하고 여러 가지 일을 실천함에도 불구하고 거듭나지 아니한 많은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 권고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역자들에게 그들의 청중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책임을 깨닫게 하고, 중생하지 않은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게 하라고 라고 분명히 말씀하실 것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앞에서의 권고를 강조하기 위하여 그 이유를 말씀하고 계신다. 좁은 문 이외에 또 다른 문이 있는데 그 문은 좁은 문과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넓고' 또 큰 길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긴 하나 지옥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풍속'(엡 2:2)을 가리키는 말인데 중생하지 않은 모든 자들이 다 그곳에 있다. 그것은 고집과 자기 만족의 길이다. 그것은 그리로 들어가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어서 '넓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계로 정해 주신 계명을 깨뜨렸다. 육체에 속한 자들에게는 그 길을 찾기 위해 어떤 조사나 근면한 연구도 필요하지 않고 또 길을 걷기 위해 분석이나 인내가 요구되지도 않으며 그 길에 남아 있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 길이 즐겁고 쉬운 길이다.
죽은 고기는 물 흐름에 따라 떠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고기는 그것에 역행하여 떠다닐 수 있다. 그러므로 중생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무거운 죄의 법을 지탱할 힘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기계적으로 이 길을 따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모두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걸어가기가 평탄하고 수월하다. 그 길은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기 때문에" 붐빈다. 그 길은 세속적인 마음에 호감을 주는 것이어서 그 폭 또한 넓다.
여기에서 제한된 '몫'이 없고 외국인에 대한 장벽도, 색깔이나 신분이나 인종에 대한 제한도 없다. 누구나 그 길로 들어갈 수 있다. 사람들이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리고 보는 대로 걷고 정욕을 지배하고, 또 자신들의 성벽을 좇아 방종한다 해도 그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류는 본래부터 그 넓은 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길은 항상 붐빈다. 그 누구도 은혜의 기적이 그에게 역사하지 않는 한 그 길을 버리고자 하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없다.
소돔에서의 롯과 그의 아내처럼 우리 모두도 주께서 그를 불에서 구출하시기 위해 자신의 사자를 보내시지 않았다면 그 멸망의 도시를 떠나기를 몹시 싫어한다.
역시 그리스도인들도 멸망의 도시에 남아서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만원인 길을 보시고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되었으되"(사 17:12)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 길은 미혹된 길이다. 왜냐하면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길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다 주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명한 행로를 따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길을 가는 자들을 어리석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생은 짧고 젊음은 잠시뿐이다. 그러므로 젊을 때에 즐겁게 보내자. 즉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그들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 14:12).
그 길로 여행하는 자들은, 누군가가 협착한 길을 좋아하는 '광신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결론지은 것이 역시 옳은 일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 길은 치명적인 길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며 희망 없는 영원한 멸망이기 때문이다.
그 길은 무저갱과 꺼지지 않는 불과 벌레도 죽지 않는 곳으로 인도한다. 그것은 불경한 자의 길이다. 성경은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라고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오, 독자여, 회심하고 죄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 돌아와 거룩하게 생활함으로써만이 죽음의 길을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라.♡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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