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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46] 본문
구원의 길 1(마 7:13, 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구절은 주님의 설교의 앞 구절들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주님께서는 그의 왕국의 백성된 자들의 특성을 묘사하셨고, 또 그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을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가르침은 그의 청중들이 환영했던 인기 있는 견해와는 전적으로 상이하였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순전히 아브라함의 본래의 자손들이며 자신들의 몸 안에 언약의 표시를 지녔기 때문에 자기들이 모두 메시야의 백성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하여 주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사가 되기 위해서 육체의 혈통과 의식에 대한 순종 이상으로 필수적인 그 무엇이 필요하였음을 명백히 하셨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좁은 문은 자연적인 출생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특권보다 더 좁으며, 우리가 건너가야 할 협착한 길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세운 종교적인 생활보다 더 좁다.
믿음을 가지고(롬 4:6)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하며(요 8:39),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만이(갈 3:29) 아브라함의 참 자녀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 당시의 유대인들의 가르침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요즘 기독교계에서 보급되고 있는 대부분의 개념들과 두드러지게 대조를 이룬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의 엄중하신 요구를 몰랐다 해도 우리들 세대가 그들보다 나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하였다면 우리 국민의 다수는 자기들의 '기독교 국가' 의 국민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들이 할례의식이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증해 주는 것이라고 믿었다면, 교회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아세례가 하늘에 이르는 통행증을 얻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교육수준의 집단에서조차도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아들에 의해서 지시된 조건들보다 훨씬 더 받아들이기 쉬운 조건으로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을 격렬하게 반대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었다면, 지금 진리에 대한 극심한 적대자는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크게 주장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이 현재 기독교계에서 만연되어 있는 사상과 반대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할 때는 생명을 찾는 자가 적다는 사실 즉 소수의 사람만이 천국에 이를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엄숙하고 명백한 선언을 인용하라.
그러나 오늘날 이 사실을 진정으로 믿는 이들이 과연 누구일까? 그러한 진리를 담대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곳이 과연 어느 곳일까? 거의 없다고 본다.
그와는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류의 대부분 영원한 축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고, 또한 그러한 사실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어떤 사람이 죽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의 생활이 아무리 세속적이고 또 그의 사업이 부정한 수단으로 거래되었다 할지라도 그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그는 이제 안식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목사는 그의 장례식 설교에서 죽은 자가 "더 복되다" 고 선언하지 않겠는가? 만약 누군가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즉시 가혹하고 무자비한 자라고 비난받게 될 것이다. 물론 나무의 이름은 그 열매만 가지고서는 알 수 없고, 전문적인 정원사가 나무에 붙여 놓은 푯말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달갑지는 않으나 성실한 반대자는 자신의 양 떼가 '적은 무리'(헬라어로는 '대단히 적다'로 되어 있다 - 눅 12:32)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나, 종교계에서는 그 반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의 동료의 기독교적 신앙고백에 도전해서도 안 되며 이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을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허물이 있으며 어떤 사람의 신앙관이 자신과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올바르며, 또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느리다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믿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누군가가 그들을 의심하는 것은 몹시 비난받을 일이라는 사실을 그로 하여금 명심하게 하라.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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