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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44]

En Hakkore 2024. 7. 29. 11:56

황금률(마 7:12)

지금까지 지적해 온 모든 점에서 볼 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잔혹하고 불공평한 괴로움을 당해본 사람들이 이 계율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그러한 괴로움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행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더 사악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전해주는 단순한 개념보다는 체험에 의해서 사정을 더욱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일을 시도해 본 사람은 그 일을 잘 알고, 그 일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속박을 당해본 사람은 양심이 더 민감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압제를 당하거나 치욕을 당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출 22:21).

히브리 백성들은 고통스러운 체험에 의해서 무거운 짐과 잔혹한 고통 아래에서 벗이 없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았으므로, 그들은 자기의 지배하에 있는 나그네를 압제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가혹한 일에 시달려온 종들은, 만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세상에서 그들의 신분이 높아진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사려 깊은 주인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이 교훈은 하나님의 다른 모든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것이며, 인간의 외적이 면뿐만 아니라 내적인 면에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하나님의 모든 율법은 영적이다(롬 7:14).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시 19:7). 즉 이것은 육체의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의 작용과 의지의 안내자이다.

첫 번째 돌판과 같이 두 번째 돌판도 그러하다. 즉 "둘째도 그와 같으니"(마 22:39). 어떻게 같은가? 그것도 첫째와 마찬가지로 영적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 뿐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계획하느냐' 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마태복음 5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악의 있는 원한과 복수심에 가득 찬 생각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방탕한 욕망과 상상으로 말미암아 마음에서 범하는 살인과 간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웃과 불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은밀한 원한도 금지되어 있다. 즉 우리의 이웃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교훈이 요구하는 공의와 공평은 사랑의 원리로부터 생겨나는 의이다. 그러므로 이 황금률은 행동에 있어서 안내자가 될 뿐만 아니라, 또한 성도들에게는 죄의 계시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마음을 아는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을 측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이 율법을 무시하거나 어기는 지는 누구나 그들이 어떤 신앙고백을 하든지 간에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라.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말한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존 브라운).

이 세상에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때는 대단히 단호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권리는 무시한다.

그들의 채무자에게 신속하게 변제하기를 요구할 때는 매우 엄격하지만, 그들의 채권자가 당연한 권리를 요구할 때는 대단히 태만한 사람이 있으며, 비방을 받을 때에는 몹시 성을 내지만 다른 사람의 명예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 있으며,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친구들이 동정해 주지 않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그들의 이웃의 슬픔에 대해서는 매우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이 중요한 가르침을 거의 혹은 전혀 주의하지 않으면서. 말씀에 있어서는 자기의 교리가 정통이라고 자랑할 것과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를 나눈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만일 동료들을 대하는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과 모순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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