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192] 본문
염려하지 말라 6(마 6:32-34)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것을 먼저 구하고 있는가? 땅의 것인가, 하늘의 것인가? 자신의 것인가, 하나님의 것인가? 이 세상에서 유익한 것인가, 아니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확실히 해주는 것인가?
"거의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세속주의의 조류가 급속히 일어나고 있으며 그의 상응하여 영적인 부요에 대한 갈망은 썰물처럼 밀려나가고 있으을 보게 됨은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도처에서 영적인 부패의 많은 징후들이 보이고 있는데, 두려워해야 할 그것이 육신의 유익에 대한 날로 증가되는 열망에 의해 추구될 것이다. 주께서 묻는 말씀이 오늘날 우리의 귀와 양심에도 잘 울려야 하리라.
'너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하는 것은 무엇이냐?' 너희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아는 것은 무엇이냐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안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 긍지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가련한 세상 사람은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현재의 세상적인 유익에 대해 자신의 모든 정력을 소비하고 우리의 마음을 그것으로 빽빽이 채운다면, 우리의 애정을 거기에 두고 그러한 일에 온갖 지혜를 쏟는다면, 이 세상의 사람들과 같지 않겠는가?
우리가 주일의 예배 의식과 모임이라는 그 자체에 만족한다면 종교적인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않겠는가? 우리가 경건하게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신실힐 증언에서, 그리고 헌신하고 있는 일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책은 우리의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만일 한편으로 우리가 가장 빈틈없는 세상 사람처럼 그렇게 우리의 태도에 있어 무정하고, 이기적인 이득에 예민하다면, 거래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의 권익에 대해 그처럼 헤아려 살피지 않고, 우리의 사업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 그것을 약삭빠르고 교활하다면, 그는 그 책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저자가 살아 있는 모순덩어리인 까닭이다" (E. 벤, 1901).
3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고려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동포들 중 대다수가 좇고 있는, 앞뒤를 헤아리지 않는 미친 듯한 과정을 파악해 낼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이 세상의 것에 주로 열중하면서 하나님의 것에 대해서는 아주 무시하거나, 아니면 내키지 않아 하며 마지못해 마음을 두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영혼의 영원한 상태에 대해서는 거의, 혹은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그의 육신을 부양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소모한다. 그것은 본질을 간과하고 그 그림자를 붙잡는 행위이다.
이 구절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갖추어야 할 마음 내지 정신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그러한 정직한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현세의 축복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부속물 내지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며, 따라서 올바른 마음으로 우리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오직 정당한 수단을 적당하게 사용해야 한다.
또한 이 구절은 우리가 현세적인 자비를 베풀어야 할 올바른 목적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촉진시키기 위해 현세적인 자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세적인 복은 하나님의 나라에 종속되어 있는 까닭에 우리는 모든 현세적인 손실에서 자족하기를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비록 세상의 재산이 사라질지라도 여전히 지속된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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