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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71]

En Hakkore 2024. 7. 23. 22:39

염려하지 말라 3(마 5:28, 29)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이 말씀이 의복에 대한 모든 염려를 다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정당하며 경건한 염려도 있다. 그 염려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에게 정해 주신 삶의 처소에 알맞는 그러한 의복을 위해 건전한 방법으로 정직하게 일할 수 있다.

그러한 것이 우리 몸의 건강과 안위를 위해 필요하다. 본문에서 금하고 있는 바는 의복에 대한 세속적이고도 과도한 염려이다.♡ 즉 알맞게 필요한 정도의 의복에 대한 불만과, 오만에서 비롯된, 혹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의혹과 두려움에서 나온 그러한 염려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심각한 죄 중의 하나이다. 즉 이 시대에는 이상야릇하고 사치스러운 의복에 대한 욕망이 있다. 해마다 외관을 꾸미는 일에 대단히 많은 액수가 소비되고 있으며 유행을 '하나님'으로 삼고 있다.

하녀들은 저희 여주인들의 장신구들을 탐내고, 여주인들은 더 유익한 임무에 종사해야 할 많은 시간을 자신들의 몸을 꾸미는 데 소모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는 말씀에 심각하게 부딪치게 된다.♡

그런데 성직자는 이 극심한 죄를 질책하는 대신에, 침묵하는 죄를 왜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해 왔는가를 묻고 싶다. 단지 몇몇 사람뿐만 아니라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계층이 공통적으로 그 죄를 범하고 있다.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회중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최신 유행의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하여(이 스타일은 종종 도덕이 극도로 타락한 나라들에서 도입된다) 부정한 돈을 써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설교자들은 그러한 허영과 낭비를 비난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인기가 없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 아닌가? 그것은 실크 스타킹을 신고 모피 코트를 걸치고 얼굴을 감춰주는 값비싼 모자를 쓰고 있는 그들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불행히도 성직자들의 가족은 절제와 검약, 그리고 정숙의 모범이 되는 대신에 흔히들 대중의 세속주의와 소비주의로 이끌어가고 있다. 교회는 많은 다른 문제들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 문제에 있어 비참할 정도로 실패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어떤 설교자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대답하려 할 것이다.

즉 "우리는 그러한 일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더 잘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으며, 몸에 걸치는 의복에 관한 것보다는 전해줄 훨씬 더 중요한 메시지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답은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이 그의  모든 권고를 선포하고, 유익한 어떠한 말씀도 숨기지 않기를 원하신다.♡

만일 성경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우리의 첫 조상이 만든 무화과 잎사귀로 된 치마로부터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자줏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음녀들의 어미에 이르기까지 의복에 관한 말씀이 적지 않게 나옴을 알게 될 것이다.♡

지존자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신 22:5).

우리의 거리가 바지를 입은 무분별한 여자들로 가득 차게 될 때 우리에 대한 그분의 진노하심은 당연하다. 우리 성직자들이 그리도 오랫동안 불충실해 온 마당에 그 많은 교회들이 파괴되고 있는 것은 놀라울 것 없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28절).

이 말씀의 의미는 첫 눈에 언뜻 보았을 때 드러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하다.

우리가 '백합화' 란 표현에서 배우듯이 '회복' 에는 몸을 감싸는 피복은 물론 장식에 사용하는 모든 것까지도 포함되어지며, 이 말씀은 우리의 의복에 관하여 범할 수 있는 모든 양상의 죄들에 대해 나무라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에게 주심을 불신하는 일뿐만 아니라, 세상의 악한 풍조를 좇거나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바를 무시하면서 그러한 하찮은 일에 마음을 쏟아 그를 거스르는 모든 죄들을 꾸짖는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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