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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172]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72]

En Hakkore 2024. 7. 24. 17:07

염려하지 말라 3(마 5:28,29)

들에 핀 꽃들에게서 배우도록 우리에게 권고하심으로써 그리스도는 우리의 오만한 마음을 낮추게 하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천하고 비이성적인 피조물에게조차도 단지 우리가 그들이 말하는 바를 들을 귀만 있다면, 배울 만한 중요하고 가치 있는 많은 교훈들이 있기 때문이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본문의 이 말씀은 남녀 불문하고 의복에 대해 갖는 지나친 염려와 무절제한 욕망을 나무라기 위해 씌여졌다. 여기에서 주님이 의도하신 뜻의 일부가 일반적으르 간과되어 왔으며, 이로 인해 다음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여진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30절).

즉 백합화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일지라도 그것은 한낱 '들의 풀' 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과 우아함에도 불구하고 백합화는 시들어 죽으며, 그리하여 땔감으로 사용되는(석탄이 없는 동양에서) 보통 풀들과  같은 부류, 같은 처지에 속한다.

그러므로 도대체 백합화가 자랑하고 우쭐댈 만한 어떤 근거나 상황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전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창조에 있어서 대단히 낮은 서열에 속하고, 그 아름다움은 빠르게 사라지며 그 숙명은 아궁이 신세일 뿐이다.

이상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어찌해서 외모나 의복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쏟지 않아야 하는지 그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백합화같이 우아한 신체와 아름다운 생김새를 가지고 있어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에게서 많은 흠모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도 자신보다 덜 아름다운 용모를 타고난 동료들과 같은 족속으로 태어났음을, 같은 신체구조로 되어 있으며 같은 체험을 겪도록 되어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육체적인 미모란 단지 가죽 한 꺼풀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아름다운 용모는 기껏해야 짧은 몇 년 동안에만 꽃을 피울 따름이다.

질병의 침해와 슬픔으로 인해 밝디밝은 눈동자는 흐려지고, 갸름한 턱은 보기 싫게  되며, 이내 주름살이 전에 그렇게도 매력적이던 모습을 뒤덮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란 말씀대로 가장 아름다운 것도 가장 추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덤이라고 하는 아궁이를 향해 서둘러 가고 있다.

인생의 짧음과 육체적이 매력의 덧없음을 볼 때,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자만은 얼마나 허무 맹랑하고 어리석은가!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두어야 할 아름다움, 우리의 정력을 쏟아야 할 아름다움은 거룩함의 미(대상 16:29)이다.

왜냐하면 그 미야말로 쇠하여지지 않으며, 찰나적이지도 기대에 어긋나지도 않고, 죽음으로 훼손되지 않는 영원히 지속되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거룩함의 미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마귀를 닮은 죄의 가중함과 반대되는 것이다. 거룩함의 미는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슥 9:17)라고 찬미된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이것은 피조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에게 나누어진다.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시 45:13)라고 기록된 바와 같다.

진정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거룩한 천사들에게 흠모되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백합화의 덧없는 아름다움은 자신들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자들을 나무랄 뿐아니라 사치스럽고 화려한 의복을 우상시하는 모든 자들을 꾸짖고 있다.

불행히도 먹을 것이 보장되어 있을 때일지라도(현재에, 어느 정도로) 의복에 문제로. 단순히 그 보온과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시효과를 위해, 공작 같은 허영심을 만족시키고자 스스로를 괴롭히는 그러한 서글픈 비참한 상태가 타락한 인간이다.

가난한 자에게 있어 음식이 걱정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부자에게 염려를 준다. 이제 "들의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그것들은 참으로 아름다움으로 옷 입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 쉽게 사라진다.

그리고 아궁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들과 같아지기 바라며 그들과 같은 운명을 겪고자 한다는 것이 아니냐? 참으로 다음 말씀에 주의하자.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 4).♡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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