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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117]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17]

En Hakkore 2024. 7. 16. 10:51

기도 3(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유비가 있는 것일까? 부정적인 측면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혹은 어느 정도로든 하나님에게서 상 받을 만한 공로가 되는 행위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만한 공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 단 하나뿐이다. 우리가 최상의 행위를 할지라도 불완전한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받기에 전적으로 부적절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과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하시는 것 사이에는, 용서하는 행위에 관련된 당사자와 그 내용 그리고 용서를 수행하는 방법이나 혹은 그 행위의 결과에 있어서 어떠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만 한다는 율법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그 뜻에 따르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일 뿐 주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용서해야 할 빛을 지게 만드는 그 어떤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둘째로,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는데 있어서 모범이 되는 규칙이 아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말은 전자와 후자가 일치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는 말은 용서의 어떤 모범이나 규칙이 아니다.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식대로 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그 하시는 모든 일과 하시는 모든 방식에 있어서 따를 자가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에 충실히 주의하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 9).

이것은 특히 하나님께서 "널리 용서하시는 것"과 관계가 있는 말이다(7절).

셋째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이 말은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의 행위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거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전에 우리가 다른 이를 진심으로 용서해야 한다는 식의 순서의 우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만이 첫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자비는 우리가 다른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용서에 대한 위대한 비유인 마태복음 18:23-35 말씀은 우리 현대인에게 용서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은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해야 하는 동기가 된다.

즉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마 18: 32, 33)라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용서하는 방법에 있어서 주님의 모범에 따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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