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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115]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15]

En Hakkore 2024. 7. 16. 10:50

기도 2(마 6:9-13)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죄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죄는 우리에게 더러움이요 불명예요 수치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형벌의 빚을 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 형벌의 빚 때문에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얻기 위하여 우리는 마음과 기도로써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이 탄원과 앞에 나와 있는 것 사이에 들어 있는 의도적인 관계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 관계는 "우리에게 주소서...그리고 우리를 용서하소서" 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용서하심이 없이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득이 못된다. 우리의 양심이 죄악감에 짓눌리고 있을 때 어떻게 우리가 외적인 자비들로부터 참된 평안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그가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가르쳐 주셨으니, 우리가 그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믿는 데 있어서 참으로 격려가 되는 것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여기에서 '우리' 라고 하는 말은 지상에 있는 모든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일컫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최초로 가르쳐 주는 것들 중의 하나는 이타심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만큼 형제의 이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특히 형제의 현세적인 행복뿐만 아니라 영적인 행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앞의 단원에서 우리는 과거에 지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라고 기도했었다. 여기에서도 우리가 기운찬 죄의 세력에 짓눌려 새로운 범죄를 하지 않도록 구원해 달라고 간청한다. 이 요청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섭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피조물은 주권을 가지신 창조주의 처분에 맡겨져 있으며 그는 선을 지배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도 또한 절대적으로 지배하시기 때문에 모든 시험을 허락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험의 악에서 건져 주시라고 요청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기로 결정하셨다 해도(본질적으로는 선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속에 죄를 유발시킬 수도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우리는 그 시험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만약 우리가 굴복하게 되면 우리는 그 시험을 전혀 극복해 내지 못할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환난과 시련을 포함한 모든 유혹들은 그 본성과 의도를 볼 때나  그 결과로 볼 때나 악하지 않다. 구세주 자신께서도 마귀에 의해 시험당하셨는데,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그는 성령에 의해 광야로 인도되어 나가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마지막 기도문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시험의 악에서 구해 주시라고 간청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시험을 전적으로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시험으로 말미암아 심판받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주께서 몸소 다음과 같이 기도하심으로써 그 모범을 보여주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악한 죄를 짓지 않게 보호받는 것은 시험의 고난을 당하지 않도록 구함받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하시기 위하여 어느 정도로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인가?

첫째로, 우리의 최상의 이익을 위하여 시험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 즉 베드로가 일시적으로 고난을 받고 쓰러진 것은 그의 궁극적인 이익을 위해서였다.

둘째로, 악이 우리를 완전하게 지배하지 못하도록 구해 주심으로써 우리가 전적이고 궁극적인 배교를 하지 않도록 해주신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가실 때 궁극적인 구원을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하시는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러므로 가정 기도문은 송영이나 또는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찬미를 그에게 돌림으로써 끝마친다. 그것은 기도와 찬미가 항상 따라다니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대한 이 송영은 앞에서 드린 탄원들을 강조하기 위한 청원으로써 사용되었다.

우리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는 나라와 ...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청원하는데, 이 말은 우리의 간구가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간구자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으로부터 은혜로운 응답을 들으리라고 기대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것과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 중에는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기도드리는 하나님의 성품에만 우리의 소망의 근거를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시다.' 종결부분인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열렬한 소망과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는 믿음을 표명하는 말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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