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116]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16]

En Hakkore 2024. 7. 16. 10:51

기도 3(마 6:14,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 15).

지금까지 주기도문에 대한 해설을 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구절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6절에서 시작된 주님의 가르침에 추가되어서 그 가르침을 잘 마무리지어 주는 대단히 중요한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가정 기도문에 있는 이 다섯 번째 청원은 주님께서 특별히 설명해 주시기 위하여 유일하게 선택하신 내용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강조된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는 가장 고통스럽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담긴 내용이 죄 많은 우리에게 아무리 싫은 것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사실상 이 구절을 제외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메튜 헨리는 그 점에 대하여 아주 적절하게 간략한 해석을 했다.

"만일 우리가 분노를 품은 채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분노를 품으신 채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형제의 작은 허물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큰 죄를 용서해 주실 리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그뿐만 아니라 형제들 사이에서도 서로 화해를 이루게 하시려고 위대하신 중재자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야만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크게 강조하신 사실을 소홀히 다룬다면 그것은 대단히 주제넘는 일이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열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

주님이 선포하신 신성하고 엄숙한 이 내용은 간단히 처리해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중대한 사실이다. 과거의 기독교 주석가들은 이 구절에 담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현대의 우리들에게 적절히 설명하는데 있어서 비교적 실패했다.

그러한 사실은 현대의 그릇된 주석가들이 그 점을 사악하게 남용함으로써 배움이 없고 경솔한 사람들은 쉽사리 속이게 만들어 준다.

예를 들어 스코필드 주석 성경에 있는 다음의 각주를 살펴보자.

"이것은 합법적인 근거이다. 에배소서 4:32의 자비라는 말씀과 비교해 보라. 율법 아래에서는 용서란 우리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조건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세대주의자들'이 따르던 잘못된 방법의 한 예이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한다"는 미명 아래 구약의 말씀을 신약의 말씀과 대립시키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게"(롬 5:21) 하지 않고 거짓된 '자비'를 제시함으로써 기독교의 표준을 낮추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을 그릇되게 이끌어가는 스코필드 주석 성경의 해설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거기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은 우리에게 잘못한 자들을 우리가 용서하는 데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근거'라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주장은 적극적인 선포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에베소서 4:32의 은혜와 비교해 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이것은 마태복음 6:14, 15 말씀이 이 기독교 시대에는 전적으로 부적절한 것이라고 믿도록 우리에게 요구하는 말이다.

이것은 '유명한 성경 교사'가 율법과 은혜를 대립시킨 데에서 기인된 것이 분명하다.

"율법 아래에서의 용서란 우리 안에 있는 똑같은 용서의 정신을 조건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은혜 아래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는다. 그래서 우리가 용서를 받았으니 우리도 용서하라고 권고받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그런 말을 하는 자의 정신적인 혼란을 드러내 준다. 어떤 율법 아래에서도 하나님은 앙심을 품고 있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셨다. 또한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그것은 '은혜' 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불명예가 되는 것이다. 전체적인 구약의 경륜 아래에서 볼 때 회개하는 자는 이 시대에 진실로 믿는 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받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오히려 율법은 복음을 보조해 주는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20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118]  (0) 2024.07.16
[산상수훈 117]  (0) 2024.07.16
[산상수훈 115]  (0) 2024.07.16
[산상수훈 114]  (0) 2024.07.16
[산상수훈 113]  (0) 202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