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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110] 본문
기도 1(마 6:5-8)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절).
여기에 거룩하고 형언할 수 없는 기도의 특권이 있다. 우리는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와 걱정을 아시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감사의 기도로써 우리의 소청을 알려드리기 위하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거리낌 없이 열어 놓아야 한다.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말은 하나님은 세속적인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육체적인 감각으로도 알아낼 수 없고 오로지 신앙의 눈으로만 보이는 살아계신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힘써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친해지기를 애써 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실재하시도록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를 열렬히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골방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완전하심에 대하여 묵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을 생각하고,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변함없는 신실하심, 그리고 그의 무한하신 자비에 대하여 깊히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고 기뻐하라.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말씀은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는 5절의 말씀과 대조를 이룬다. 그들이 '받을 상'은 하나님의 칭찬이 아니라 그들의 경건한 외양에 속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바치는 무가치한 찬사이다.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 왜냐하면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시 17:14) 이라는 말씀처럼 장래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쓰라린 비통함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경우와는 전연 다르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에게 어떤 것을 받을 만한 공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올바른 원리에 의해 올바른 목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면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며, 최후의 심판 날에 하나님에게 공공연히 인정받게 될 것이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7절).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가 같은 것을 반복해서 구하는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기도의 의무와 특권을 단지 입술로만 구하는 데에서 그치는 행동을 책망하신 것이다.
우리는 시편 119편에서 "우리에게 율례를 가르치소서" 라는 다윗의 기도를 7번이나 찾아볼 수 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의 잔을 치워 주시기를 반복하여 청하셨으며, 바울은 그의 육체에서 가시가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 간구하였다 (고후 12:8).
그러므로 바알의 예언자들이나(왕상 18:26) 아데미를 숭배하는 자들이 사용한 것(행 19:34) 과 같은 기도의 공허한 반복을 금지시킨 것이다.
그리고 로마교도들이 아무런 의미나 신앙도 없이 묵주 알을 굴려 수를 셈으로써 바치도록 배운 '묵주 기도'와 '성모송'도 공허한 반복에 불과한 기도이므로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냉담하고 형식적으로 바치는 즉흥적인 기도도 마찬가지로 해서는 안되는데, 그러한 기도는 단지 입으로만 중얼거리는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8절).
이교도들이 기도에 반박하여 논쟁할 때, 하나님이 전지하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요구를 알려 드려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하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이 바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알리기 위하여 우리의 소청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의무의 명령에 복종하는 표현으로써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는 분임을 자인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하늘의 선물을 올바르게 받고 증진시키는 수단이므로 우리의 영혼에 없어서는 안 될 준비인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지식은 단순히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주는 간청인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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