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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109]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09]

En Hakkore 2024. 7. 16. 10:47

기도 1(마 6:5-8)

"네 골방에 들어가라"는 말은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정해진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시실도 암시하고 있다. 비록 거기가 산이든 들이든, 혹은 우리가 거주하는 곳이든 기도를 위해 지정된 장소가 있어야 한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울었다고 하였다(삼하 18:33). 그런데 그곳은 다윗이 주님께 자기의 슬픔을 항상 토로하던 장소인 것 같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그녀의 아들이 죽었다고 알렸을 때 엘리야는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었었다"(왕상 17:19, 20).

우리 구세주께서도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하셨다. 그가 "나아가서 습관을 좇아 (하나님께 간구 드릴 특별한 목적으로) 감람산에 오르셨다"(눅 22:39)는 성경 말씀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골방'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신약성경의 원전에 네 번이나 나타나 있다. 그런데 마태복음 24:26에는 '밀실'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우리 주님이 사용하신 이 말씀은 아마도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라는 이사야 26:20의 구절에서 택해진 것 같다.

"골방에 들어가라"는 말은 유대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골방'이란 단순히 밀폐된 장소를 뜻한다. 그래서 남의 시선과 참견을 피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을 듣는 그리스도의 청중에게는 무엇을 암시해 주는 것일까? 유대인의 성전 중심부에는 완전한 '밀실' 이었던 한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여호와께서 지성소에 특별히 계실 곳을 마련하신 장소로서 성전의 가장 내부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이 바로 '골방' 이었는데 거기에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 장소는 조용하고 은밀함하며 격리되어 있어 한적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는 독특한 모양이었다. 출입문도 창문도 없었으며 하늘로 개방되어 있던 동방의 밀궁과는 달리 이 지성소는 지붕으로 덮여 있었고, 하늘로 난 창문도 두지 않았다.

그리고 민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대제사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레위인도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단히 의미심장해 보이는 사실은 지성소 안에 오직 단 하나의 가구만이 있었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속죄소로 덮인 증거궤였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우리가 반드시 지적해야 할 주목할 만한 예외가 하나 나타난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드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민 7:89). 그러므로 거룩한 '골방' 이란 인간이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장소이다.

우리가 개인적인 기도를 드릴 때에 은밀함을 유지할 것을 강조한 표현이 6절에 두 군데 나와 있다. 하나는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이며, 또 하나는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구절이다.

전자는 마음을 소란하게 하고 분산시키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모든 소리를 피하기 위하여 한적하고 고요한 장소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후지는 하나님하고만 지내기 위하여 그의 거룩한 성소에 들어가 지성소에서 하나님과 이야기하며 교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들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라는 구절에서, 2인칭 단수대명사를 특별히 강조하여 지적한 것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 가운데 가장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이 한 절에서만 2인칭 단수대명사가 8번이나(영어 성경의 경우) 사용되었다. 하나님하고만 있어야 하는 필연적인 필요성을 이보다 더 두드러지게 표현한 것은 아무데도 없다. 이 필요성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전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이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이 말씀은 그 뜻으로나 문자로나, 마치 종교적인 활동을 위하여 따로 지어진 건물이 우리가 사는 곳이나 개방된 야외보다 은총의 보좌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누구든지 개인적으로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밤낮으로 교회에 자주 갈 수 있도록 항상 교회를 열어 두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잘못된 사람들을 책망하는 것이다.

천지의 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전에는 계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신다(행 17:24, 27).

그리스도께서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 24)라고 선포하셨을 때 예배드리는 장소를 한정하던 것을 폐지하셨다.

교회가 집을 떠나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항상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태복음 5:5, 6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 그러한 제도는 잘못된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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