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99] 본문
율법과 사랑 3(마 5:43-48)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47절).
이 말씀에서의 주님의 의도는 앞 절에서와 같으며, 말씀을 반복하신 의도는 이 중요한 진리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더 견고하고 깊게 새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우리가 사랑의 의무를 행하는 데, 특히 원수에 대해 사랑을 행하는 데 더디기 때문에 사랑의 의무가 반복해서 우리에게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인간과도 다르게 말씀하셨던 그분이 그토록 자주 반복하여 말씀하셨다면, 그의 종들은 그 일을 행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고 훼방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길을 방해할 때도 그들에게 인사해야만 한다. 이와 같을진대 길에서 만난 형제를 의도적으로 지나쳐 버리고 완전히 이방인 취급을 하다니 얼마나 나쁜 일인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 10절)의 말씀은 주께서 하신 이 말씀과 전연 상반된 말씀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금하신 것은 개인적이며 사사로운 적이지 요한이서 10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공적인 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는 얼마나 마음을 살피게 하는 질문인가? 또한 그 말씀의 정확성도 잘 눈여겨 보기 바란다. "남보다 무엇을 더 아느냐? 도 아니요. "남보다 무엇을 더 공언하느냐?"도 아니요. "남보다 더 무엇을 믿느냐?도 아니다. 그저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다.
그러나 이 질문이 곡해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선포할 때 복음의 나팔이 확실한 소리를 내는 것이 한편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마찬가지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언제나 나타나는 행위에 의해 입증된다는 사실도 필수적으로 명확히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지는 것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이지만 홀로 동떨어져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생명력이 있고, 적극적이고,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믿음이다.♡
공허한 신앙고백자의 무가치하고 비생산적인 믿음을 구별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맺은 결실에 의해서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신생할 때에 성령이 안에서 역사하신 초자연적인 원리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열매로써 증명된다. 그것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갈 5:6) 믿음이다.
그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믿음이다(행 15:9). 그것은 "세상을 이긴" 믿음이다(요일 5:4). 이 믿음의 선물을 받은 자들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해야만 하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또한 중생하지 않은 자보다 더 많은 것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대의가 세상의 경멸을 받게 한 것은 그의 추종자라 주장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추종자라 공언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오히려 더 조금 행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들은 정직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이기적이며 자비롭지 못하다. 불경건한 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악한 자의 자녀에게보다 그의 제자에게 더 많이 요구하신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백이 사실 행위로서 증명되어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허황되고 위선적인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구세주에게 불명예스럽고, 그의 백성에게는 방해가 되고, 그의 원수에게는 모독할 기회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받은 자들이다. 영원한 사랑을 받고, 무한한 대가를 치러 구속되고, 성령이 내주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해 내야만 한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함이 분명하다.
사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하였다. 초자연적인 원리가 그들 속에 내재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 마음속에 흘러 들어오고, 하나님의 충만한 은총이 그들에게 내려져 믿는 자에게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면전에서 이 질문에 대답해 보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8절).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사랑의 의무를 완벽하게 이행하라고 권고하시면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의 결론을 맺으신다.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은 율법의 불변한 요구이며,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란 복음이 우리에게 제시해준 숭고한 기준이다.♡
하나님의 성품의 도덕적 탁월성은 우리에게 제시된 모범이고 규칙일 뿐이며,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도록 진지하고, 열성적이고,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한 목표가 비록 세상에서는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바울처럼 다음과 같이 말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뛰어난 사도가 그와 같은 고백을 했음을 생각해 볼 때 이미 죄가 없는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과장은 얼마나 황당무개하고 터무니없는 말인지를 알 수 있다.
실제로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동행하면 할수록 우리 마음속에서는 자기만족과 교만은 사라지고, 스스로 낮아져 겸손해지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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