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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98]

En Hakkore 2024. 7. 15. 15:04

율법과 사랑 3(마 5:43-48)

다음으로 나아가기 전에 창조와 섭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적인 선물들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여기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즉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라고 하셨다. 그것은 단순히 '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즉 그것은 그의 해이지 우리의 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또한 조정하시는 것으로 그가 좋으신 대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게 한다.

주님만이 이 천체의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해를 계속해서 존재하게 하시며 그 능력과 효력을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하늘, 땅, 바다의 다른 모든 피조물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같은 방법으로 그는 특별한 사명을 주어 "비를 내리게 하신다."

그는 언제, 어느 곳에 비가 내리게 될 것인지를 지정하셨고, 그 결과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마르게" 되었다(암 4:7).

끝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친구, 즉 선인과 의로운 자와, 하나님의 적, 즉 악인과 불의한 자를 지칭하실 때 사용하신 용어에 대해 살펴보자. 선인과 의로운 자는 인격과, 악인과 불의한 자는 행위와 관련된 말이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6절).

이 절과 다음 절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와 청중에게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밝히셨는데, 우리가 '세리'란 누구를 말하는가를 이해했을 때만이 그 의미가 명백해진다.

'세리' 란 로마 황제를 위해 유대인으로부터 세금과 공물, 지방세와 임대료를 거두어들이는 관리를 말하는 것으로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에게 예속되어 있었다.

가장 타락한 유대인 중 몇 명이 그러한 일을 함으로써 생기는 돈을 위해 그와 같은 비열한 일을 하였다. 누가복음 19:8을 보면 세리가 그의 돈주머니를 두둑이 하기 위해 불의와 억압에 의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미움과 경멸을 가장 많이 받은 자였다(마 9:11; 11:9). 그러나 이러한 세리까지도 비록 그들이 양심은 버렸다 할지라도 자기를 사랑한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던가? 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우리가 그 이상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들보다 더 낫다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한 자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그저 세속적인 사랑을 정죄하고 계실 뿐이다.

자기가 타인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구실삼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방법으로, 올바르게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음 규칙에 주의를 이울여야 한다.

즉 두 번째 돌판에 새겨진 모든 계명을 첫 번째 돌판에 새겨진 계명,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지키듯 그대로 지켜야 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에서도 말씀하듯 부모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 공경되어져야 하며, 또한 그가 나의 원수라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나의 이웃을 사랑해야만 한다.

무엇 때문일까? 내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듯 그 또한 진정한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도록 내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도 우리의 이웃을 더 사랑해야 할 이유가 많겠지만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복종해야 할 근거가 되어야 한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이 질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생활의 순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지혜의 원리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곧 하나님께서 보상의 약속을 주신 것을 행하는 데 특히 열중해야 한다는 원리를 강조하신다.

이 말을 좀 더 설득력 있고 인상 깊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 모세에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하기를 거절하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힘으로 모세는 애굽의 보화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이길 수 있었다. 그 힘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히 11:25)이라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오늘날 몇 명이나 이 진리를 믿고 그 원리에 의해 행동하며, 또한 왜 우리 시대에는 그 진리가 그렇게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죄악의 낙'에 굴복한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어떤 보상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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