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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45]

En Hakkore 2024. 7. 11. 11:33

율법과 살인 1(마 5:21-26)

예수께서 여기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새 시대와 완전히 부합한다. 시내 산에서 내려주신 계시는 비록 그것이 은혜의 언약 위에 덧붙여지고(아브라함에게 내려주신 언약, 갈라디아서에는 '다한 것' 으로 묘사됨, 갈 3:19),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율법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 율법의 직접적이고 표면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높이고 억압적이고 단호한 힘으로 인간 본성의 부패 성향에 대항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에 산상설교는 축복으로 시작된다. 이 산상설교는 은혜의 충만한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계속적인 축복, 곧 팔복과 선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설명을 통해 인간의 깊은 소원과 간절한 욕구 중 그 어느 것도 세워지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약과 신약 사이의 차이점은 상대적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양편에는 근본적으로 같은 요소도 있지만 이들은 서로 다르게 적용되어 각각이 맡고 있는 목적이나 속하는 시대에 꼭맞게 적용된다.

"율법의 계시에는 십계명의 서문에 나오는 말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은혜의 토대가 있다. 즉 십계명에서 말하는 엄격한 금지와 명령과 함께 섞여 있는, 축복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은혜의 약속들이 들어 있다.

그와는 반대로 산상설교에서는 은혜에 우선권과 탁월성을 부여해 주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성품과 통치의 엄격한 면을 결코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로 은혜가 팔복에 주어지자마자 의와 율법(그것은 시내 산에서 선포된 바로 그 율법이다)의 엄격한 요구가 뒤따른다. 율법이 그와 같이 명백하고 강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마음속의 계획과 생활속에서의 행위까지도 완전히 지배한다.

그리고 그 율법에 대하여 인간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메시야 왕국에서의 그들의 위치와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P. 페어벤 Fairbaim).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엄격한 '의의 요구' 이다. 앞에서 우리 주님께서 그의 종의 임무를 '자연과 소금' 의 행위에 비유함으로써 앞으로 행해야 할 것에 대한 성격을 암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17절이 이 내용의 전환점이다.

17절에서 20절까지의 내용은 5장 마지막 부분까지의 서문이 된다.

율법을 '완성' 하러 왔다고 확언하시는 가운데 주님은,

첫째로, 하나님의 신실한 증인이요 교회의 선생으로서 순수하게 그리고 영적으로 율법을 해석하고 그 당시의 거짓 선생들의 부패로부터 율법을 보호하는 것,

둘째로,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인격적이고 완전하고 영원하게 율법에 복종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위로 율법의 의를 나타내시는 것,

셋째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시는 것, 이것들이 자기의 임무라고 암시해 주셨다.

어떤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과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일 이것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분명한 말도 불명료하게 보일 수 있고 아무리 확실한 논리도 불만족스럽게, 아무리 적합한 예도 무관하게 보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여러 구절에 대해 모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영감받은 저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오해하여 저자의 주장과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목적이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결과 생기는 상당한 오해가 우리가 앞으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우리 주님의 설교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17절에서 20절의 말씀을 생각해 본다면 그 다음의 내용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17절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하거나 무효화시키기 위해 오지 않았음을 명백히 밝히고, 또한 그의 의도가 하나님의 율법을 새 율법과 바꾸려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설교의 대강을 설명한 후 다비(Darby)가 (그의 개관에서) 17절에서 48절에 대해 각주를 덧붙이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이상할 것 없다. 각주에서 그는 "이 율법의 명령과 그리스도께서 요구하는 것 사이에는 큰 대조가 있다."

즉 마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20절에서 주 예수는 일반 원리를 선언하였고, 21절 이하에서는 그의 왕국의 신하로서 그가 다스리고 있는 사람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어떻게, 어떤 점에서 능가하고 있는가를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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