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Exodus 297]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97]

En Hakkore 2024. 6. 30. 14:58

속전 2(출애굽기 30:11-19)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3).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 24:8). 하늘의 모든 천군과 땅에 있는 군사가 모두 그의 것이니, 그들을 계수함은 그분의 특권이다.

여호와께서 이러한 그 특권을 수호하시기에 얼마나 질투심이 많았는지는, 다윗의 역사 가운데, 엄청난 세력으로 보여주었다.

다윗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영도하는 임무를 맡았기에, 그가 군사들 앞에서 자기의 위치를 차지하는 동안에는 무사하였으나, 세월이 지나자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영광을 갈구하였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시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대상 21:1-4, 7, 8).

백성을 헤아리는 일에 무슨 해가 있냐를 질문할 수 있다. 인구를 조사하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 육신을 따라 싸우며, 세상의 원칙에 따라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하다.

하지만 부정한 자 요압마저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계수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 행위를 여호와의 권세와 영광에 극악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그리고 심판이 그 당한 것과 같이 어김없이 뒤따르는 것으로 알고 반대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다른 이에게 양도하지 않을 것이다. 오호라, 다윗은 이를 망각하고 이스라엘에게 악을 초래하였다.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신 유일하신 한 왕이 있는데,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명하는 일을 위임 받았기에, 아버지의 영광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네가 이스라엘의 자녀를 계수할 때에" 라고 명하신 바와 같이 모형으로 우리 앞에 있다. 즉 오직 모형적 중재자만이 하나님의 백성을 계수할 수 있었다.😎

위에서, 우리는 성경의 네 번째 책에 기록한 이스라엘에 대한 계수는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자신에게로 구속하신 백성을 자신의 소유로 전유하심과 이들에 대한 규제를 설명한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이 곧 우리들 앞에 있는 부분에 대한 열쇠를 제공한다.

교리적으로 구속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이스라엘의 '계수'에 대한 이러한 첫 번째 언급을 발견하는 것은 적절한 것이다. 또 그 구절이 시작될 때에,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출 30:12) 라고 말한 것은 의미가 깊다. 그러므로, 보통 그러하듯이, 그 열쇠는 우리를 위하여 바로 문 위에 걸려 있다!

이 속전에 대한 의례에 중심이 되는 내용은 하나님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만을 그분 자신에 대해 선택한 자로 전유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출애굽기 12, 13장에 이미 있는데, 거기에서는 그분에게로 속량되었기 때문에 그에 의하여 보호를 받은 '장자'에 대한 설명이 있다.

출애굽기 12, 13장에서 '장자' 는 피 뿌림에 의하여 속량되어 지켜졌으며, 여기 출애굽기 30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은'에 의하여 여호와의 소유(계수됨)로 인정되었다. 그 형상의 변경은 어려움 없도록 해야 한다.

이 구절에서 두 번씩이나 그 돈을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 이라는 용어로 특별히 칭하였다. 성막의 기초를 이룬 널판들 아래 있는 은 받침에 대하여 거론할 때 지적한 바와 같이(출 26:19), 희생제물의 피는 그것에 의하여 실제의 속죄물이 죄를 위하여 제공되어야 했던 형식을 좀 더 가깝게 보여주었지만, '속전'(atonement-money)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구속되어야 했던 그 소중함을 적절히 선포하였다.

이에 대한 좀 더 큰 확증은 이스라엘 무리의 방백들이 "속죄를 위하여" 금을 제물로 가져온 것을 기록한 민수기 31:49-54에서 발견된다. 민수기 3:46-51; 18;15, 16을 보면 이것이 단 하나의 구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원형(the antiype)이 이루어졌을 때 성령이 어떻게 그것을 챙겨두는지를 관찰하면서 우리의 모형(type)의 의미를 가장 잘 배운다.

"죄를 위한 한 희생" 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4)고 선포할 때, 우리는 황소와 염소의 피의 상징적 의미를 아주 분명하게 본다.

그렇듯이, 우리가 모든 구속의 부귀를 소중히 여기는 주님을 주목하면서, "너희가 알거니와 ...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너희의 헛된 대화에서 나오는)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는 말씀을 들을 때, 은-속전과 금-속전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연관해서 그 "보배로운 피"(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표현)는 그 "속량하는" 돈('피'가 그러한 성격을 가지듯)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이 값진 희생을 예표하였음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것은 이 장의 서두에서 주목을 받은 난해한 그 구절에 대한 첫 번째의 어려움을 만족스럽게 해결한 것이 아닌가?

사실, 이스라엘에게 그의 생명을 위하여 금전적 속량물을 드리도록 요구했지만, 이것은 황소나 양을 드린다고 해도 그 드리는 자가 그것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구원이 죄인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죄를 위한 속죄를 홀로 담당하 수 있는 이(즉, 그리스도)에 대해 모형과 원형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즉 드리는 자가 희생제물을 죽이는 것은 그분의 피 흘림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은이나 금을 가지고 오는 것은 그의 피의 소중함을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 자신이 각각 제공했다는 것은 죄인은 그의 피의 소중함을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 자신이 각각 제공했다는 것은 죄인은 믿음으로 주 예수를 개인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전유해야 하며 그의 죄와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 그리스도를 두어야만 한다는 진리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559

'강해시리즈 > 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odus 300]  (0) 2024.07.01
[Exodus 298]  (0) 2024.06.30
[Exodus 296]  (0) 2024.06.30
[Exodus 295]  (0) 2024.06.30
[Exodus 294]  (0)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