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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217]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17]

En Hakkore 2024. 6. 25. 11:38

떡상(출애굽기 25:23-30)

4. 떡상 위에 있는 내용물(1)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출 25:30).

이 진설병은 고운 가루로 만든 열 두 개의 떡, 또는 과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구워서 두 줄로 상 위에 놓았으며, 그 위에는 기념할 순전한 향로를 뿌렸다. 그것은 여호와 앞에 칠 일 동안 두었다가 거두어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에서 먹었다(레 24:5-9 참조).

이러한 열두 개의 떡으의 정확한 싱징적 목적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의 차이점이 있다. 한 무리의 주석가들은 그것들에게서 여호와 앞에 나온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로 보지만, 이 견해는 이 떡들을 이후에 제사장의 가족들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석을 제공하지 못한다.

다른 이들은 그 떡들이 하나님의  양식으로서의 그리스도와 주님의 자녀들을 예시한다고 보지만, 이 견해는 그 떡들이 각 견해마다 일정량의 진리가 있다고는 개인적으로 믿기는 하겠지만, 정확한 설명을 취하기 위해서는 크나큰 주의가 요구될 필요가 있다.

그 상과 그 위에 놓인 빵에 의하여 제시된 생각들이 긴밀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한 것은, 뒤에 그 상의 이름이 그 위에 놓인 빵으로부터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민수기 4:7에서 "진설병의 상"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긴밀한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9:2에 보면 그것들이 독특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어서 따로 구분하여 고려해야만 함을 가르친다.

이것과 가까운 유사점을 고린도전서 10:21과 11:20에서 볼 수 있는데, 전자에서는 "주의 상"(21절)이라고 했고, 후자에서는 "주의 만찬"(20절)이라고 했다. 그 하나는 우리의 교제의 성격을 나타내며, 다른 하나는 우리들의 교제가 형성된 재료를 말한다.

우리가 믿기로는, 이 사실이 우리의 모형을 구분하는 열쇠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즉 그 상은 하나님과 그의 성도들 사이에 교제를 유지하게 하는 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리키며, 그 떡은 그 재료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을 지시한다.

상 위에 있는 빵은 먼저, 성막에 있는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 그것이 불리어진 이름이 분명히 이 사실을 지시하는데('진설병'[shee-bread]이란 문자적으로, "얼굴의 빵"으로, 임재의 모습으로 놓여진 얼굴이다).

이는 빵이 놓여 있는 곳에 계신 거룩한 임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하심과 같다. 떡이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항상 그것이 그에게 열납됨을 말하며, 아버지께서 언제나 그로 인하여 즐거움을 누리는 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인격을 예표하였다.

레위기 24:5에서는, 상 위에 있는 빵을 "열두 개의 과자"(한글 성경에는 떡으로 되어 있음)로 묘사하는데 영(Young)이 성구사전에서는 "바늘구멍이 나 있는" 캐로드(challoth) 과자라고 설명했다. 이 얼마나 진지한 의미인가!

이 빵은 찔림을 당했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도다! 고운 가루로 과자의 형태를 만들어 불에 구운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그의 백성을 위한 죄가 되셨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의 불에 노출되었던 주 예수를 가리킨다.

그러나 바늘구멍이 나있는 과자가 열 두 개인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히 이 숫자는 이스라엘과 특별히 연관이 있으며, 당시 하나님 앞에 표현되어진 각기 다른 지파들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은 대표자를 포함하는데, 바로 이 점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교훈을 놓친다. 여기에서 참으로 복되게 상징된 것은 주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이러한 빵[떡]이라는 모습 하에서 주님을 그의 백성으로, 그리고 그 백성을 주님과 동일시하는 놀라운 구절이 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 17).

그렇다면 열 두 개의 빵은 그의 백성과 직접적 연결을 이루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 택정하신 백성과 자신과의 교제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자기를 낯춘다는 놀라운 사실은 성막 예식의 모든 부분에 반영된다.

그 사실들은 제사장의 직책, 흉배, 그리고 분명히 이러한 구약성경의 상징주의는 신약성경의 사실에서 그 예언적 보완물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계시에 의하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속에 흠이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의 목전에 나무랄 것이나 꾸짖을 것이 없는 자들로 나타나야 한다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 골 1:22"(Me. G. Needham).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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