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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65]

En Hakkore 2024. 6. 22. 10:55

하나님의 율법(출애굽기 20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그것은 곧 도덕, 종교의식 그리고 시민생활에 관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세 가지 방식으로 존중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이성적인 피조물로서, 도덕과 자연적 의미의 양자에서, 최고의 원인(the Supreme Cause)으로서의 하나님께 의존하였다.

따라서 그런 식으로 십계명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열 개의 율법은 그 본질상 보통 말하는 인간이 결속된 자연의 법칙(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기록한 작품 A. W. P)과 다름 아닌 동일한 것이다.

둘째, 그들은 구약의 교회로서, 약속된 메시야와 주님이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셔야 하는 복된 때를 기대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의식법을 받았는데, 그것은 실제로 나타난 메시야는 아직 오직 않았으며, 그의 속죄물(희생제사)에 의하여 만물을 완전하게 하지 못하거나, 그가 오시면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셋째, 그들의 가나안 땅에서 특별한 백성으로서 가나안 땅에서 그들의 재능과 성향에 적합한 통치의 정책을 가졌다.

그들에 의하여 세워진 국가는 낡아빠진 철학자들이 윤곽을 그렸던 그런 형태에 따른 것이 아니라, 요세푸스가 그것을 의미심장하게 명명한 이른바 신정(theocracy)이라는 특수한 방법으로 얻은 것으로, 하나님 자신이 그 안에서 국가조직의 통제권을 가진다(사사기 8:23).

이러한 견해로 볼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정치적인 법을 규정한 것이다(현대인들이 참작할 것이 많은 사려 깊은 신학자, Heman Witsius, 1680-1708)."

우리는 고인이 된 무디가 '십계명 해설'(Weighed and Wanting)이란 책에서 한 말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호렙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계명은 그 백성들의 귀에 선포된 바로 그때 이후로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한결같이 구속력이 있다.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율법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속한 땅)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광야 속에서 주어진 것은, 율법이 모든 열방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십계명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이 있다고 믿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라고 믿는다.

첫째, 위대한 창조자의 권위가 주님에 의하여 선포되고 그 피조물에 의하여 시인되는 것이 옳고 지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요구하신 것이요 모든 건전한 정신을 가진 자마다 그것이 옳은 것이었음을 시인할 것이다. 비단 타락한 천사들마저도 율법의 체제 아래 있기에, 그들에 대하여 성경은,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93:20)고 했다. 오직 불법한 영만이 모든 인간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할 책임이 있다는 진술을 맹렬히 비난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그 십계명은 결코 폐지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 손가락으로 썼다는 것, 즉 양피지에 쓰지 않고 돌 판에 썼다는 바로 그 사실은 그것의 영구적인 성격을 결정적으로 증명한다.

기독교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십계명을 그들을 결속하는 것으로 중요시해야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반대된다면, 하나님은 분명한 언어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 폐기를 선포한 단 한 마디의 말이라도 찾아보려고 한 수고는 수포로 돌아갔다.

셋째, 우리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매우 개량되어 천년 전에 보다 훨씬 나아졌기 때문에, 거룩한 율법에 대한 요구가 더 존속하지 않다는 것인가? 만약 옛날 언약의 백성이 그러한 법령을 갖고 싶었다면, 오늘날의 이방인은 그만큼 그런 조건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인가?

요즈음 사람들은 우상숭배의 경향이 희박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한 거룩한 계명이 필요 없다는 것인가? 육신적 마음의 증오심이 잘 다듬어져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 기회가 좋지 않다는 것인가?

이 20세기의 자녀등은 그들의 부모들에게 너무도 헌신적이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돋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인가? 요즈음 인간의 생명을 너무나 존중하게 간주하여, "살인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무익한 것인가?

결혼관계를 매우 신성하게 여겨, "간음하지 말라"는 말이 불합리한가? 그리고 이제는 세상이 속에 너무도 많은 정직이 존재하기에, 우리의 동료들에게 하나님이 "도둑질하지 말라" 고 말하는 것을 상기시키는 일이 시간낭비가 되는가?

오히려 오늘날의 형편을 고려할 때, 십계명은 이 땅의 모든 강단에서 우렛소리처럼 울려 퍼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Arthur W. Pink 출애굽기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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