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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77]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77]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En Hakkore 2024. 2. 22. 09:44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수 3:7-8).

1 이적

모세가 죽기 전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가 그의 후계자가 되어 백성을 인도할 것임을 나타내셨고, 그분은 그를 엄숙히 구별하여 그 직분에 세운 바 있다(민 27:18-23). 모세는 여호수아가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할 것"임을 이스라엘에게 공포하였고(신 1:38),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다"(신 34:9).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하는 명령을 다 행하고 그가 이끄는 대로 어디든 기꺼이 갈 것임을 서원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에게 베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명했다.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수 1:16-17).🌱

두 정탐꾼이 그의 명령을 받아 여리고를 탐색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싯딤으로부터 요단 강까지 그를 따라갔고(수 3:1), 거기서 사흥 동안 머물렀다. 이제 여호와께서 그분의 종을 보다 더 확실히 보증하실 때가 다가온 것이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왔고, 이제 그가 상급을 받을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그 백성 앞에 고귀한 모범을 세운바 있었고, 하나님이 그분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실것이라는 확신을 신뢰성 있게 표현한 바 있었는데(수 1:11, 15). 이제 여호와께서 자신을 우러러 높인 그를 존귀하게 하실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그저 몇 가지를 신실히 행하였는데 수많은 이들의 통치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분께 드리는 헌신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 그는 과거에 홍해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하셨듯이, 이제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존귀를 베풀어 주실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그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출 19:9).

그는 과연 그렇게 모세를 존귀하게 하셨다. 그런데 여기 요단 강가에서 그는 여호수아를 존귀하게 하셨다. 그에게 권위를 베푸셨고, 그가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지명받은 자임을 확증하신 것이다. 그 결과가 여호수아 4:14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존경하고 순종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수 4:14)👍

그러나 바로 앞에서 지적한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사실은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리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여호수아보다도 무한히 높으신 분의 의도를 감지하는 데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곧 하나님이 여기서 그분의 종을 위해 행하신 일은 훗날 같은 요단 강가에서 그분의 아들에게 친히 행하실 일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그가 세례를 받으시자마자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그때 거기서 그분이 "이스라엘에 나타나신 바 된 것"(요 1:31)이다. 그때 거기서 그분의 위대한 사명이 공적으로 드러났다. 그때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 드러내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단 강가에서 일어난 일의 모형이다.

"이 일은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요 1:28). 핑크가 사용하는 영어 흠정역에는 베다니를 벳다바라[Bathabara]로 읽음. 역주).

벳다바라는 "지나가는 곳"(the place of passage)이라는 뜻이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스라엘이 강을 건넜고 여호수아가 큰 위엄을 얻은 바로 그 곳에서 아버지께로부터 확증을 얻으신 것이다!

그러나 두 사이의 대조점이 과연 엄숙했다. 요단 강가에서 일어난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신적으로 지명받은 지도자요 통치자라는 것을 알았고, 그리하여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그를 두려워했고"(수 4:14), 그분의 명령에 전폭적으로, 무제한적으로 순종했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