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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9]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9]

En Hakkore 2024. 6. 12. 11:06

불붙는 떨기나무 앞에 선 모세(출애굽기 3장)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4, 5).

이것은 '불꽃'의 도덕적 의미, 즉 하나님의 거룩한 활동을 해석하는 데 얼마나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가, 법궤를 덮은 속죄소에 거하시는 세키나의 영광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여호와의 임재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지성소에 거하시는 그의 거룩하심의 명백한 상징이었다.

거룩 안에서 하나님은 애굽인들과 그의 친 백성들을 모두 다스리려 하셨고, 이것에 대해 모세는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매일의 행함과 삶을 의미하는 신발을 벗어야만 했고, 진정한 예배의 영으로 가까이 나가야 했다.

이것은 오늘날의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는 또 다른 교훈이다. 포도원에서 일하는 모든 일꾼마다 그가 관계하는 분, 또는 그가 섬기고 있는 분이 지극히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간직해야 한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의 육신의 가벼움과 경박함을 억제하게 될 것이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출 3:6).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 모든 은혜의 하나님으로 모세 앞에 드러내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불러 그의 택한 백성의 열조로 삼으신 것은 그들 가운데 어떤 우수함을 보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순수하고 지극한 자비 때문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그가 히브리인들을 그들의 속박에서 구하려 하심도 그들 속에, 또는 그들로부터 어떤 선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 주권적인 선택자(the sovereign Elector)로서 그렇게 한 것이다. 또한 이삭의 하나님 - 능력있게 소생시키는 자(the almighty Quickener)로서,
야곱의 하나님 - 오래 참으시는 자(the long suffering One)로서 그렇게 한 것이다.

즉 주님은 그의 팔을 펴시어 그의 힘을 나타내시고 그의 백성을 구속하려고 하신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동일한 성품으로서 오늘날도 행하신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극진히 우리를 택하신 분이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이삭의 하나님은 그의 놀라우신 능력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야곱의 하나님은 무한하신 인내로 우리를 참으시고,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관계된 것을 온전케 하실 것을 약속하신(시 138:8)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 3:7).

이들 히브리인들의 여건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즉 이들은 애굽인의 노예로서 잔인한 압제로 짓눌림을 당하고, 바로의 쇠막대기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죄의 종이요, 마귀의 포로인, 자연적인 사람의 여건을 얼마나 잘 그려주는가. 이것은 탐욕의 노예나 도울 길 없는 약물의 희생자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자나 품위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실이다.

그들도 역시 황금, 쾌락, 야망, 그리고 숱한 다른 것들의 속박 가운데 있다. 그 죄가 가져다준 '고통' 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육신적 고통에서만 아니라 쉼이 없는 정신과 민족하지 못하는 심령에 있다.

갖가지 '육신의 탐욕' 은 옛날 애굽인 간역자들만큼이나 무자비하며, 오늘날의 죄악의 노예로서 '슬픔' 은 애굽의 쇠가마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만큼이나 처절하다.

공정하게 보이는 사회서 표면 뒤에 어려움이 실제로 있도다! 죄를 통하여 전 인류에게 온 고통은 얼마나 무서운가! 이 얼마나 구세주가 절실히 필요한가! 우리에게 들어오시고자 하는 그분을 경멸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

Arthur W. Pink 출애굽기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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