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68]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68]

En Hakkore 2024. 6. 9. 11:03

믿음의 권속 4(히 11:39-40)

하나님께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맺으신 영원한 언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다루시는데 있어서 기초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언약 사건의 차원과 복들이 옛 언약과 새 언약 아래서 하나님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은 세상 역사를 통해서 예증될 수 있다.

실제적으로 모든 나라에는 주요한 두 정당이 있다. 정책은, 특별히 서로 라이벌격인 정당들이 취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 정당이 다른 정당이 가지고 있던 정권을 인수할 수도 있고,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 그들의 통치의 특징들을 나타낼 수도 있으며, 많은 다른 법률이 다시 제정되거나, 때때로 폐지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나라의 "근본적인 체계"는 여전히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이다. 모세의 경륜과 그리스도의 경륜 사이에는 그러한 것이 드러난다. 많은 상세한 국면들 속에서 대단히 다른 것들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덕적인 통치는 언제나 모세의 시대나 기독교 시대의 그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은혜와 의와 긍휼과 공의와 진리와 미쁘심의 동일한 근본 원리에 따라서 시행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중생하여 남은 자들과 중생하지 못한 채 이스라엘 민족에 속했던 사람들 사이에 구별은, 오늘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가득한 수많은 거짓된 신앙고백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근본적인 것이다. 전자는 후자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거짓된 신앙고백자들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이듯이, 아브라함의 혈통에 속해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유대교의 껍질로만 싸여 있었던 것이다 - 그리스도의 날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보라.

우리 시대에 생명없는 종교인들이 말씀의 "문자적인 면"에만 사로잡히고, 그 말씀의 신령한 실상과 체험적으로 친숙하지 못하듯이, 구약시대에 생명을 갖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들의 의식의 겉모양에만 사로잡혀 있었지, 그 알맹이까지 침투하여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유대인 중에 진정으로 선택한 백성이 있었다. "이면적 유대인이었던 남은 사람들"(롬 2:29)이 표면적으로 유대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 수많은 무리 속에 섞여 있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성도들 중, 남은 자들의 누렸던 영적인 몫은 오늘날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는 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었다(창 6:8). 우리와 똑같다는 말이다.

진정 우리와 똑같이 그들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시 133:3). 그들은 우리가 마음으로 그러하듯이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알고 즐거워했다(시 32:1,2).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성령으로 가르치심을 받았다(느 9:20).

그들은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스러운 장래를 전혀 모르는 채 있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당에서는 외부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13,14절).

여기서 "본향"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냥 "코-라"(chora)가 아니고 "파트리스"(patris)인데 고국, 모국을 의미한다. 자기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그런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구약의 성도들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모든 본질적인 신령한 복락을 누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더 좋은 것"은 정확히 무엇이란 말인가? 영원한 언약의 "탁월한 행정"이라고 대답하여야 할 것이다. 어떤 특별한 국면에서 그러한가?

첫째,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보다 그리스도를 더 잘 보게 되었다. 그들은 모형과 약속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우리는 그 모형과 약속이 성취되고 이루어진 가운데서 그를 보았다.

둘째, 믿음을 위해서 더 넓은 기초를 갖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오셔서 자기들의 죄를 없이 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셋째, 그들은 교사들과 다스리는 자들 아래서 그 수가 적었다. 반면에 우리는 시대적으로 다수를 확보하고 있는 자들과 입장에 서 있다(갈 4:1-7).

넷째, 하나님의 은혜를 더 넓게 부어 주고 계시다. 이제는 더 이상 한 민족 속에 선택하여 남은 사람에게만 그 은혜가 국한되지 아니하고, 모든 족속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들에게 다 그 은혜가 미치는 것이다.♥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치 못할지라)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7:19). 어떤 일을 "온전케" 한다는 것은 그 일을 잘 끝낸다는 뜻이며, 그 일에 속한 모든 일을 온전히 이룬다는 뜻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본문이 가리키는 것은 하늘에 있는 믿음의 전체 가족의 영원한 영광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기로 그 온전함이 이루어지는 "여러 단계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온전함을 이루는 방편들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죄 사함을 받고 있다 -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불완전하게 했던 것이다 - 그리고 사람에게 의의 옷을 입혀준다.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 점에 있어서 구약의 성도들은 "우리가 아니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와 우리의 죄는 '동일한' 희생제사에 의해서 속함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인격과 우리의 인격도 같은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이다.

둘째로, 내주하는 죄의 능력을 제어하고,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의 길로 행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여기에서 구약의 성도들은 "우리가 없이는 온전케 되지 못하였다"(상대적으로). 시편 23:4와 51:11에서 능력이 나타난다.

셋째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자들의 공격을 이겨내도록 하시며, 영원한 성장을 계속하도록 하신다. 이런 점에서 구약의 성도들은 "우리없이" 온전케 되지 못하였다. 시편 97:10을 베드로전서 1:15와 비교해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590

◆시편 97장 10절.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베드로전서 1장 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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