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65]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65]

En Hakkore 2024. 6. 9. 11:00

믿음의 권속 1(히 11:39-40)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니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도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 속에 있는 섬세한 국면들은 보다더 주의깊은 생각을 하도록 한다.

첫째로, "약속"이란 말이 여기서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둘째로, 어떤 의미에서 구약 성도들이 그 약속을 받지 못했는가.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더 좋은 것은 무엇인가. 넷째로, "온전함을 이룬다"는 뜻이 여기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대단히 구구하다. 심지어 믿을 만한 주석가들마저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서로 의견차이를 보이는 곳에서 교리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합당치 못하다.

이런 여러 가지 관점들로 독자들은 고통스럽게 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의 분량을 따라서 본문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해나감에 있어서 마음 속에 명심해야 하는 몇가지 사항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첫째로, 우리가 다루는 본문이 앞에 있는 구절들과 서로 연관이 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일이다. 둘째로, 그 각 소절들이 정확하게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셋째로, 이것이 씌여져 있는 히브리서의 독특하고 주도적인 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이 부분을 연구하는 일이다. 넷째로, 이 대목과 병행이 되는 대목들 속에서 그 중요한 용어들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비교해 보는 일이다.

만일 이 네가지를 신중하게 지킨다면 해석에 있어서 그리 크게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열거한 우리의 의도는, 어떤 난해 구절을 비평적으로 다루므로서 나타나게 되어 있는 마이동풍적인 방식을 경계시키려 함이다.

이 본문들과 앞에 있는 구절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하나도 없다. 사도는 믿음의 놀라운 역사와 그 열매들을 통해서 믿음의 덕과 그 힘을 강력하고 거대하게 드러낸 다음에, 이제는 보편적인 요약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다".

우리가 다루는 본문 속에 들어있는 모든 각 소절마다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이 사람들이 다"라는 소절은 앞의 구절들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그 모든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좋은 증거"가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서 더 좋은 것을 마련하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의 주도적인 주제는 유대교에 비하여 기독교가 말로 할 수 없이 탁월하다는 것읻다. 이 본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어휘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숙고해 볼 문제이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다".

여기에서 두가지 요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표현하는 술어적인 좋은 부분이다. 여기서는 히브리서 11장 앞 구절 모두에서 언급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필요한 추론을 하자면,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에 참된 믿음을 나타냈던 모든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람들이 다"라는 말은 여기에서 언급되는 믿음을 갖지 아니하는 다른 사람들은 제외시키는 제한적인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던 이 시공 세계에 같이 있었으면서도 선한 증거를 전혀 받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가인도 아벨과 함께 제사를 드렸지만 그러한 증거를 전혀 받지 못했다. 함도 셈과 함께 방주에 있었고,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가족 중에서 이삭과 함께 있었고, 에서도 같은 태에 있었다. 다단과 아비람도 갈렙과 여호수아와 함께 홍해를 건넜다.

많은 다른 약한 불신자들이 신자들과 함께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은 그러한 선한 증거를 얻지 못했. 비록 그들의 외향적인 조건이 같아 보였지만 그들의 내면적인 성향은 많이 달랐다"(W. Gouge).

오늘날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곳에 크게 다른 두 부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믿는 사람중에서도 또한 구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을 신령한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역사함을 받는 사람들이 적은 반면에, 말씀의 문자적인 면을 육신적인 차원에서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후자의 믿음은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믿음을 구원받은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음 - 단순히 성경의 신적 권위를 이기적으로 찬동할 뿐이며 그 성경내용의 순전성만을 인정할 뿐이다 - 마치 그러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날에 유대인들이 거의 다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었다.

외향으로 볼 때에는 훌륭해 보였지만 그러한 믿음은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경건한 삶을 유발시키지 못했다. 성령이 작용을 통해서 영혼 속에서 초자연적인 믿음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나타낸다. 여기 히브리서 11장에서 언급된 남자들과 여자들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신적인 원리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로 세상을 이기게 하며, 가장 지독한 원리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로 세상을 이기게 하며, 자장 지독한 환란도 참아 견뎌내게 하며, 하나님과 그 진리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게 한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584

'강해시리즈 > 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Hebrews 167]  (0) 2024.06.09
[Hebrews 166]  (0) 2024.06.09
[Hebrews 164]  (0) 2024.06.09
[Hebrews 163]  (0) 2024.06.09
[Hebrews 162]  (0) 202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