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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100]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00]

En Hakkore 2024. 6. 5. 11:39

이삭의 믿음 5(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이 "축복"은 죽어가는 아버지가 자기 아들들에 대한 선한 뜻을 나타내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특이한 것이었다. 이삭은 하나님께 대하여 한 선지자로서 자기 후손들의 장래를 선포하고 그 후손들이 각가 차지할 다양한 분깃을 공언한 것이다.

그는 예언의 영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대언자가 되어 자기의 두 아들이 각자 특별히 차지할 기업이 어떠한 것인가를 미리 공표하였다. 그래서 그의 말은 이루어졌던 것이다.

오늘날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의 장래를 예고할 정도로 초자연적인 능을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의인들과 그 후손들에게 어떠한 약속을 해주셨으며, 그것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가를 성경을 통해 연구하고 확인시켜 주는 것은 부모들이 할 일이요 특권이다.♥

그러나 이삭이 성령의 즉각적인 감동으로 그렇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그가 "믿음으로" 자기 아들들을 축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그가 자기의 책임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리브가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약속하신 것들을 종합하고 그 약속들을 의존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주도적인 약속들을 숙고한 바 있다. 창세기 22:16-18에서 발견되는 것을 주께서 자기 아버지에게 말씀하실 때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 자신이 창세기 26:2-4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의 수령자가 되었다.

여러 해 후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것을 마음에 두고 그 약속들을 견고히 붙잡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태어날 그의 후손들의 장래 기업에 관하여 흔들리지 아니할 확신으로 공표했던 것이다.

이삭이 야곱과 에서에게 "장차 올 일"에 관해 축복했다는 것은, 히브리서 11:1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라는 말씀의 두드러진 실례이다. "아브라함은 이제 죽었고, 이삭은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 주어진 땅에 사두었던 무덤에 곧 묻려질 판이다.

믿음의 바라는 것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바랄 근거도 조금도 나타나 보이지 않았다. 그의 후손들, 곧 야곱이나 에서 어느 누구도 약속된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 같은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말한 것은 전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확실히 믿는 데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위대한 실제적 교훈이다. 이삭의 믿음의 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더 큰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부추긴다. 이삭은 가장 보배로운 확신으로 가나안 땅을 이미 안연히 차지한 것같이 생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실 그는 그 땅에서 한 뼘의 땅도 소유하지 못했고, 자기가 묻힐 곳 외에는 그 땅의 어느 곳에 대해서도 인간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있다. 더구나 그가 예언할 당시에 가나안에는 기근이 있었고 그랄 지방에 피난하여 있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창 27:29)라는 말씀은 이삭의 외적인 경우만 바라본 사람에게는 공허한 말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우리도 역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바 장차 올 복락에 대하여 확신해야 한다. 지금은 그러한 것에 대한 뚜렷한 조짐을 전혀 볼 수 없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이미 우리의 것이 된 것처럼 확신해야 한다는 말이다.♥

위에서 말한 것을 다음과 같이 반박할지 모르겠다. 창세기 27장에 나타난 기사를 통해서 볼 때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은 "믿음으로"라기보다는 부지중에 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러한 반론에 대하여 맨 먼저, 믿음의 대상은 언제나 하나님 자신이며, 믿음이 의지하는 터전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삭의 경우에도 그러하셨다. 그의 믿음은 언약하신 하나님을 견고히 의지하였다. 이 점은 그가 야곱을 에서로 착각했다고 해서 결코 부정되지 않았다.

둘째로, 그 점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에는 통상 어떤 약점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예증한다. 이삭의 경우에는 에서를 편애한 것이다.

셋째, 그가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 그 변장한 야곱에게 선포된 축복을 되돌리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달게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여 그것을 확증하였다. 비록 에서가 울며 통곡하며 그의 마음을 바꾸려 하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삭의 믿음의 힘을 본다. 이삭은, 자기의 육신적 정을 십자가에 못박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지각하자마자 불평하며 하나님께 대들지 아니하고, 주께 무릎을 꿇고 굴복했다. 이것은 언제나 참된 믿음의 역사이다.

참된 믿음은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여 우리 육신의 성향을 거스리게 한다. 역시 우리 자신의 이성의 방향을 거스리게도 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너무나 위대하시고 너무나 능력이 있으시며 영광스럽기 때문에 명령하시면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아브라함이 그러하듯이 이삭의 경우에도 그러하였다. 믿음은 약속뿐만 아니라 훈계를 바라본다. 믿음은 우리를 감동하여 순종의 길을 걷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행하게 미리 정하여 놓으신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더욱더 확증될 수 있기를 바라나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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