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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65]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65]

En Hakkore 2024. 6. 2. 09:17

아브라함의 삶 1(히 11:9,10)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11:9,10).

우리가 지난 강론에서, 갈대아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심을 숙고해 보았다. 또한 그때 아브라함이 받은 부르심은 그의 옛 삶을 온전히 청산하게 하였고,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철저하게 복종하여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였음을 알았다.

우리는 그것을, 중생의 본질적인 한 특징을 상징적으로, 모형적으로, 예증적으로 나타내는 실례로 취급하여 생각하여 보았다. 곧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한 백성들을 효력 있게 부르사, 죽음에서 생명으로, 흑암에서 그 기이한 빛으로, 그 부르심이 산출하는 여러 복된  열매들을 차지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취급하였다.

우리가 강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보았듯이 아브라함 속에서 강렬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그의 삶의 방식이 철저하게 달라지게 된 것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브리서 11장 9절과 10절을 숙고하기 전에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완벽한 것이었는가? 이 순종은 흠이 없는 것이었는가?

아, 사랑하는이여, 그 대답을 찾아내기가 어려운가? 이 지상에서 살았던 사람 가운데 완전한 삶을 산 경우는 하나밖에 없었다. 만약 아브라함의 행실에 실패가 전혀 없었다면, 그도 흠 없는 모형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모형들은 모든 요점에 있어서 예리하게 정확하다.

성령께서는 자기의 말씀 속에서 여러 실상을 띠고 있는 자기 백성들의 성격들을 그렸다. 그는 그 백성들을 있는 그대로 신실하게 묘사하셨다. 참으로 은혜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아브라함 속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육체"가 그로부터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진실로, 초자연적인 믿음이 그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불신앙의 뿌리가 그에게서 완전히 뽑혀진 것은 아니었다. 두 반대되는 원리가 아브라함 속에서 역사하고 있었고(우리들 안에도 그러하다), 그 두 원리가 다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사항들은 분명하게 지시되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적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이 요청에 대한 그의 첫번째 반응이 창세기 11:31에 기록되어 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람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 거하였으며". 그는 갈대아를 떠났지만, 그의 "친척"들과 헤어지는 대신 그의 조카 롯을 동반하였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하란에서 머물러 정착했다. 아브라함은 미봉책을 썼다. 그의 순종은 부분적인 것이었으며, 머뭇거리고 더딘 것이었다. 그는 육체의 생각에 굴복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본 강해서 저자와 독자는 여기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발견하지 않는가! 또한 자신이 서글픈 실패의 모습을 보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잠 27:19).

우리는 방금 위에서 언급한 것을 "억지로" 해석하여(벧후 3:16) 손해당하지 않도록, 극히 주의할 은혜를 열심히 구하도록 하자. 만일 이러한 생각이 일어난다고 하자.

"아, 그렇구나, 아브라함은 완전하지 못했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언제나 행한 것은 아니구나. 그러니 내가 그보다 더 낫게 행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거야".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마귀로부터 온 시험임을 명심하도록 하라.

아브라함의 실패는 우리가 피하여 뒤로 물러가 숨거나, 우리 자신의 죄악적인 실족을 가볍게 보게 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가 마음에 명심하고 기도하면서 주의하도록 경계해 주는 많은 경고들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경고들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핑게대지 못하게 한다.

구약 성도들이 계속하여 실족하는 것을 발견할 때,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더 하나님 앞에 겸비해지고, 더 깊게 회개하며, 자신을 더 의뢰하지 않으며, 의의 길을 지키고 계속 진행해 나가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간절하고 부단하게 간구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실패했지만, 하나님께는 결코 실수함이 없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흘러 넘치는 은혜와 변치 아니하시는 미쁘심과, 결국 그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복되다. 우리 마음의 기쁨과 우리 영혼의 경배와 찬미를 위하여, 성령께서는 구약 성도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빛뿐 아니라 그늘도 그처럼 신실하게 기록해 놓으셨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구약에 나오는 성도들의 삶은 우리가 극히 조심해야 할 엄숙한 경고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자기 자녀들의 무딤과 방황에도 그처럼 오래 참으시며 온유하게 견뎌내신 하나님의 기이한 인내에 대한 많은 실증들로서의 역할도 감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루실 때 그들의 죄를 따라 다루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불의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지 아니하시는 무한한 긍휼의 실증들로서도 역할을 감당한다. 이 점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녹는가,

또한 "모든 은혜의 하나님"에 대한 얼마나 참된 예배와 감사를 격발시키는가(벧전 5:10). 모든 참으로 중생한 영혼에게마다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고 일어나야만 한다. 비록 중생치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방종"의 도구로 삼아 영원한 멸망에 이를 뿐이지만 말이다(유4).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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