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44]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44]

En Hakkore 2024. 5. 30. 16:21

아벨의 믿음 4(히 11:4)

"믿음으로(하나님께서 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케 한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영원한 "도모"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아벨의 예배가 더 나음을 다음과 같이 말해볼 수 있다.

첫째, 그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순종"하여 드린 것이다. 바로 이 점은 하나님께 열납되는 모든 행동들의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주지 아니하신 것이면 어느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 밖에 다른 모든 것은 "자의적 숭배"이다(골 2:23).

둘째, 아벨의 제사는 "믿음으로" 드려졌다. 이 점은 아벨의 제사에는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믿음의 원리로부터 나오며 성령에 의해서 뜨거워진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만을 인정하신다. 참된 순종과 믿음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순종의 믿음"(롬 1:5)에 대해서 읽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과 순종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생각을 해볼 때는 서로 구분된다. 믿음은 "약속"의 말씀에 관한 것이고, 순종은 "명령"의 말씀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약속과 훈계가 서로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의무들을 수행하라고 촉구하는 명령이 우리 생각과 마음 속에서 최상의 위치를 차지할 때 순종하게 된다. 약속을 바라보고 그 약속에 입각하여 상받는 것을 생각할 때 믿음으로 행동하게 된다.

셋째, 아벨은 "자원하는 마음"을 가졌었다(고후 8:12).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갈 5:6). 이 점은 그가 제일 좋은 것으로 잡아 드렸다는 사실을 통해서 밝혀진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몫으로 정하여 맡겨 주신 "양떼들 가운데 첫 새끼"를 드린 제사였다(출 13:12).

그 양의 첫 새끼가 죽임을 당하여 그 "기름"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렸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역시 그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선언하셨다(레 3:16; 7:25). 그래서 아벨이 하나님께 잡아 바친 것은 지상에서 가장 보배롭고 가치 있는 것들에 속하였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요구하신다.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라"(잠 23:26). "사람이 마음으로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저 위대한 제사를 예표하여 그려 주었다. 이 네 가지의 모든 요점에서 아벨은 가인보다 나았다. 가인은 순종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정하심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다. 그가 농사지은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드렸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마치 손에 잡힌 것을 아무거나 드렸던 것 같다. 그의 제물에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을 하나도 담고 있지 않다.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우리가 여기서 취할 '실제적인' 교훈을 간추려 보기로 하자.

1) 하나님께 열납되게 섬기기 위하여, 모든 인간이 생각해 낸 것들을 무시하고 우리 자신의 이해나 성향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엄격하게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알리신 계시에 집착해야 한다.

2) 모든 순종과 예배와 섬김은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그를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히 11:6).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정확하게 해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열납되지 못한다.

3)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섬겨야 한다. 우리의 재능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의 가진 것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으로 섬겨야 한다. '사랑'이 우리를 강권할 때만이 그 일을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게 될 것이다.

4) 우리가 행하는 모든 종교적인 행사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앞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 모든 행사들이 그리스도의 공덕을 풍겨낼 때만 하나님께 마땅히 열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아벨은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그것으로"(우리말 개역성경에는 이 표현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영어성경에는 관계사로서 이 표현이 나타나 있다 - 역자주)가 아벨의 믿음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그가 드린 더 나은 제사"를 가리키는지에 대하여 약간 애매한 것이 있다. 후자가 가장 가까운 선행사이기는 하지만,

오웬(Owen)이나 고우지(Gouge)나 맨튼(Manton)과 같이 우리는 그 관계사가 그의 믿음을 가리킨다고 믿는다.

첫째, 사도가 이 히브리서 11장에서 하나님께 열납되었던 제자들의 종류를 나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사도의 명백한 목적은 믿음의 효력을 예증하고 증거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사도가 여기서 구약성도들에 대하여 방금 말한 것을 실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믿음으로 "그들은 증거를 얻었다"고 말하였던 것이다(2절).

넷째, 믿음의 유추로 볼 때 그렇게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한 번의 완전한 제사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서게 되었다는 증거를 마음 속에 가지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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