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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76]

En Hakkore 2024. 5. 23. 16:10

난제와 반론 5

한 구절을 더 보자. 고린도후서 5장 19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라고 말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바로 이어지는 부분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가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도 '세상'은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흰 보좌의 심판이 장차 보여줄 것처럼,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죄가 그들 자신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5장 19절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이유는 거기 속한 자들의 죄를 그들의 대속자가 담당했기에 그들의 죄가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세상이 무엇인가? 오직 하나의 대답만 적절하며 가능하다. 하나님의 백성의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3장 16절의 '세상'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세상을 가리키는 게 분명하다. 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것은 온 인류를 의미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인류의 절반은 이미 지옥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다른 모든 구절을 찾아서 보라.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요한복음 13장 1절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은 3장 16절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우리가 창작한 소설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 그 이후의 많은 사람이 거의 일관되게 제시한 해석이다.

이 책의 4장<구원과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 살펴보라. 여기서 수없이 많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물질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인정하는 많은 사람이 우리가 하나님이 영적 세계에서도 주권적이시라고 주장할 때 반론을 제기하고 흠을 잡으려는 것은 이상하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와 다투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 제시한 모든 주장에 대해 그것을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을 제시했다. 만약 이것이 독자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우리가 독자들에게 확신을 주려고 애쓴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글은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유익을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이 장에 일부러 포함시킨 여러 성경 구절을 살펴보기 바란다.

성경의 구절구절이 제한된 수가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되었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을 주는 구절이라면 "[주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하는 베드로후서 3장 9절일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해 가장 먼저 말해야 할 점은, 다른 모든 구절처럼 이 구절도 문맥 속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용한 구절은 베드로후서 3장 9절의 일부분이자 마지막 부분이다. 그러므로 9절의 전반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구절이 흔히 추정하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 입증하려면, 문맥이 온 인류를 가리킨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것을 분명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 정당하고 올바른 결론이 아닌 게 분명하다. 이제 9절의 전반부를 살펴볼 차례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여기서 '약속'은 단수이며 '약속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라." 약속이란 무엇인가? 구원의 약속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성경 어디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는가? 그렇게 약속하신 곳이 어디 있는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약속은 구원에 관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문맥이 말해 준다. "먼저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하니"(벧후 3:3-4).

문맥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말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 약속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맞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약속 성취가 지체된 시간이 길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계산으로는 짧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으로 하면, 그분이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다시 보내시는 일이 지체되는 까닭은 그분이 꾸물거리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구를 향해 오래 참으시는가? 우리가 살펴보는 구절은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너희'란 누구인가? 온 인류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인가? 문맥에 비춰볼 때, 각자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해도 좋은 열린 물음(정답이 없는 질문)이 안니다. 성령께서 분명히 밝히셨다.

베드로후서 3장 1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앞 절은 "사랑하는 자들...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8절)고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 '너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이다.

베드로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 1:1)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가리킨다는 데는 의심이나 이론이나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다.

이제 9절 전체를 인용해 보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무엇이 이보다 더 분명하겠느나? 하나님이 멸망하지 않길 원하시는 '아무도'(any)는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너희'이며, 앞 절들에 나오는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롬 11:25)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다시 보내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금 이방인 중에서 취하시는 백성을(행 15:14 참조) 다 거둬들이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이 완전해질 때까지, 자신이 이 세대를 구원원받도록 선택한 자들이 자신에게로 다 모으실 때까지 자신의 아들을 다시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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