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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70]

En Hakkore 2024. 5. 23. 16:06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우리의 태도

4. 깊이 감사하며 기뻐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우울한 복종과는 전혀 다르다. 이 세상은 기껏해야 나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는 정도밖에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으면 우리의 내면에서 경건한 두려움과 순종과 복종이 일어날 뿐 아니라 시편기자처럼 고백하게 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 103:1).♡

사도 바울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엡 5:20)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영혼의 상태가 자주 테스트를 받는다. 우리는 일이 자신의 바람대로 잘될 때는 하나님께 아주 감사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일이 자신의 계획이나 바람과는 정반대로 진행될 때는 어떤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긴 기차 여행을 마치고 목적지에 이르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때, 우리는 이런 모습을 당연하게 여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면, 기관사에게, 신호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장사를 하는 경우라면, 한 주가 잘 마무리 되었을 때, 하나님께,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것도 하나님이 모든 고객을 당신의 가게로 이끄신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다. 이런 예는 아무런 어려움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들을 상상해 보라. 내가 탄 열차가 몇 시간이나 연착했다면, 내가 안달하고 불평하지 않겠는가? 내가 탄 열차가 다른 열차와 충돌해 내가 심하게 다쳤다고 상상해 보라.

또는 한 주 동안 장사가 형편없었다거나, 내 가게에 벼락이 쳐서 불이 났다거나, 강도가 들어와 가게를 몽땅 털어갔다고 상상해 보라. 이때 나는 어떻게 하는가?

욥을 다시 생각해 보자. 그에게 비극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을 때, 욥은 어떻게 했는가?자신의 불운을 불평하거나 도둑떼를 저주하거나 하나님께 따졌는가? 아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분을 경배했다.

사랑하는 독자여, 당신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손을 보는 법을 배울 때까지 당신의 가엾은 마음에는 진정한 안식이 없다. 그러나 이것을 배우려면, 믿음이 끊임없이 일해야 한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맹신이나 숙명론적인 태도인가? 아니다.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믿음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며, 따라서 믿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 8:28). 그러므로 믿음은 "범사에...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다"(엡 5:20). 살아 꿈틀대는 믿음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한다"(빌 4:4).

이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러한 인식 - 이것은 경건한 두려움, 절대 복종, 완전한 내어맡김, 깊은 감사와 기쁨으로 표현된다 - 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최고로, 완벽하게 보여주셨는지 살펴볼 차례이다.

주님은 모든 부분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본을 남기셨다. 그렇다면 앞에서 제시한 첫 번째 핵심에서도 이렇게 하셨는가?

'경건한 두려움'이란 표현이 비할 데 없는 그분의 이름과 연결되는가? 경건한 두려움은 노예의 공포가 아니라 아들의 순종과 공경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 9:10)이라는 것도 기억할 때, 성육하신 지혜이신 분과 관련해 '경건한 두려움'이라는 용어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는가?

히브리서 5장 7절은 참으로 놀랍고 귀한 말씀이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주 예수께서 어린 시절에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신 것은 다름 아닌 '경건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는가?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눅 4:16).

우리가 이 말씀에서 보는 것이 경건한 두려움 - 하나님께 대한 아들의 복종과 공경-이 아닌가? 사탄이 뛰어내리고 자신에게 절하라고 유혹했을 때, 성육하신 아들이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눅 4:8)고 말씀하신 것은 경건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는가?

그분이 깨끗해진 나환자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마 8:4)고 말씀하신 것은 경건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는가? 주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하신 순종은 참으로 완벽하지 않았는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하나님의 형상의 본체이신 분이 종의 형체를 입기까지 자신을 낮추어 순종의 자리에 서게 한 놀라운 은혜이다. 완전한 종으로서, 그분은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셨다.♡

"[그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우리는 이 말씀에서 그분의 순종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완전했는지 배운다. 그분의 말씀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이것은 분명히 외식적이며 자발적인 순종이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0:17-18).♡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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