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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69]

En Hakkore 2024. 5. 23. 16:05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우리의 태도

3. 하나님의 주권을 진정으로 이해하면, 그분을 향한 불평이 모두 사라진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좀더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고통과 잃음에 대한 불평은 어쩌면 당연하다. 마음을 쏟았던 것을 빼앗겼을 때, 투덜거림은 어찌 당연하다.

우리는 자기 소유를 무조건 자기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기 계획을 성실하게 훌륭히 해냈을 때,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부지런히 노력해 상당히 축적했을 때, 그것을 지키고 누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이 우리를 두를 때, 우리는 그 어떤 권력도 법적으로 아름다운 울타리를 침범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쓰러뜨릴 권한이 없다고 느낀다. 이 중에서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실망하게 되면 - 파산이나 죽음이 실제로 찾아오면 - 하나님께 소리치고 대드는 게 인간의 비뚤어진 본능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주권을 인식한 사람의 내면에서는 이러한 투덜거림이 입을 닫는다. 대신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하나님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만큼 많은 고통을 주지 않으셨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진정으로 깨달으면, 하나님에게는 그분의 뜻대로 우리에게 행하실 완전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전능자의 뜻에 복종하는 자는 그분의 절대적 권리, 곧 자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실 권리를 인정한다.

하나님이 가난이나 질병이나 가정의 아픔을 주기로 선택하신다면, 그 마음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도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4)라고 말하겠는가?

이생의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신자의 마음에 육신의 생각이 남아 있으므로, 내면의 싸움이 자주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갈등이 있더라도, 이 복된 진리에 자신을 진정으로 드린 자는 때가 되면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고 명하는 음성을 들을 것이다.

그때 내면의 사나운 폭풍이 잔잔해지고, 차분해진 영혼은 눈물이 가득하지만 확신에 찬 눈으로 하늘을 보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엘리 대제사장의 이야기는 영혼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복종하는 주목할 만한 예이다. 사무엘상 3장에서,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계시를 주셨다. 엘리의 두 아들을 그들의 사악함 때문에 죽이시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사무엘은 이 메시지를 늙은 엘리 대제사장에게 전한다. 경건한 부모의 마음에 이보다 무서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자녀가 갑자기 죽으리라는 선언은 어느 상황에서든, 어느 부모에게든 큰 시련이다. 더욱이 두 아들이 한창 때, 전혀 마음의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끊어지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엘리 대제사장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이 전해준 비극적인 소식이 엘리 대제사장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엘리 대제사장은 이 무서운 통보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삼상 3:18).

그는 이 말밖에 하지 않았다. 놀라운 복종이다! 경외심을 자아내는 태도이다! 인간의 마음에 이는 가장 강력한 파도를 잠잠케 하며, 거역하는 의지를 제압하여 여호와의 주권적인 뜻에 완전히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본보기이다!

욥의 생애도 똑같이 주목할 만한 예이다. 잘 알듯이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다. 하나님의 섭리가 자신에게 미소지으리라고 마땅히 기대할만한 사람을 하나 꼽으라면, 욥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보상을 받았는가? 한동안 그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일곱 아들과 세 딸을 주셨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마다 번성하게 하셨고,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모든 게 바뀌었다. 단 하루사이에 욥은 가축뿐 아니라 자녀까지 모두 잃었다.

도둑떼가 가축을 강탈해 갔으며, 자녀들이 큰 바람에 무너져 모두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왔다. 그런데 욥의 감동적인 말에 귀를 기울여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욥은 여호와의 주권적인 뜻에 복종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끝까지 추적했다.

자신의 가축을 강탈한 자들과 자녀들의 생명을 앗아간 큰 바람 뒤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보았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기뻐하기까지 했다.

그는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라고 말한 후에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덧붙였다. 이 또한 참으로 아름다운 복종이다! 경외심을 자아내는 태도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진정으로 인식하면, 자신의 모든 계획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게 된다. 이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20년 전에 영국에서 일어났다.

빅토리아 여왕(1819-1901, 재위 1837-1901)이 죽은 후, 여왕의 맏아들 에드워드 황태자의 즉위식이 1902년 4월로 잡혔다. 그런데 이를 알리는 모든 공문에 D. V.(Deo Volente, 하나님의 뜻이라면)라는 작은 주 글자가 빠져 있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장엄한 대관식을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고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졌다. 세계 각지의 왕들과 황제들이 즉위식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을 받았다. 황태자의 포고들의 인쇄되어 게시되었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한, D. V.라는 두 글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가장 성대한 대관식이 계획되었으며, 서거한 여왕의 황태자가 아무 날, 아무 시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에드워드 7세(Edward the Seventh, 1841-1910, 재위 1901-1910) 즉위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인간의 모든 계획이 좌절되었다.

고요하고 작은 음성이 들렸다. "너희는 나를 빼놓고 계획을 세웠다!" 에드워드 황태자가 갑자기 맹장염에 걸렸고, 그의 대관식은 수개월 연기되었다.

말했듯이 하나님의 주권을 진정으로 인식하면,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게 된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지고한 뜻대로 진흙을 빚을 절대적 권한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다음과 같은 훈계 - 불행히도 지금은 너무나 일반적으로 무시되는 훈계 -에 주목하게 된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 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 4:13-15).

그렇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내가 미국이나 아프리카나 그 외에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실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 내가 부하게 사아야 하는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지, 들의 꽃처럼 젊어서 꺾일지 70년을 살아야 할지를,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할지를 결정하실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

이 교훈을 진정으로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학교에서 은혜로 높은 학년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교훈을 배웠다고 생각할 때라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거듭 거듭 발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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