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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66]

En Hakkore 2024. 5. 23. 16:03

하나님의 주권과 기도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신 이유 2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따라서 진정한 기도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 간에 공통된 생각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그분의 생각으로 채우셔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바람이 우리의 바람이 되고, 우리의 바람은 다시 그분에게로 흘러간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만난다. 우리가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듣지 않으신다. 야고보서 4장 3절은 이렇게 말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 16:23)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맞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약속은 기도하는 영혼에게 백지위임장을 준다는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는 요한의 말과 완전히 일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이것은 단순히 기도 공식에 불과하지 않으며, 단순히 기도를 끝낼 때 쓰는 표현에 불과하지도 않은 게 분명하다.

무엇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려면, 구하는 바가 반드시 그리스도께 맞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직접 간구자가 되시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면 구하실 것만 구한다는 말은 우리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기도에 대한 우리의 정의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행동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이다. 기도란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전부는 아니지만, 기도의 본질적이며 주된 요소이다.

기꺼이 인정하건대, 기도를 간단히 한 문장이나 몇 단어로 정의하기란 전혀 불가능하다. 기도는 인간의 태도이자 행동이다. 그러나 기도에는 신적인 요소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불가능할뿐더러 불경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거듭 주장하는 것은,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께 지시하기가 아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데, 이것은 주님이 그분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데 만족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우리는 하나님이 이런 마음으로 드린 모든 기도에 틀림없이 응답하신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장을 시작하며 던졌던 물음의 해답이며, 잘 알려진 난제에 대한 성경의 해결책이다.

기도란 하나님께 그분의 목적을 바꾸거나 새로운 목적을 세우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며, 자신의 필요를 그분께 겸손히 아뢰는 것이며, 그분의 뜻에 맞는 것들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인의 기도 사이에는 아무런 불일치도 없다.

이 장을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에게 한 가지 주의를 당부한다. 우리의 논의를 토대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장에서 기도에 관한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기술하려 하지 않았으며, 기도의 문제를 전체적으로 논의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논의를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관계에 대체로 한정했다. 이 장은 무엇보다도, 기도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 쪽을 거의 보지 못하는 현대의 가르침에 대한 반발이다.

예레미야 10장 23절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라고 말한다(잠언 16:9 참조). 그러나 인간은 기도하면서 주님께, 그분이 가야 할 길을, 그분이 해야 할 일을 지시하려 들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인간은 심지어. 자신이 세상과 교회의 일을 지시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넌저시 말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육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많은 기도회에서 이런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모두 거만한 피조물이 무릎 꿇고 바닥에 엎드리기까지 낮아져야 한다는 교훈을 얼마나 더디 배우는지 모른다! 기도는 우리를 바로 이런 자리에 두려 하나. 그러나 인간은 발등상을 왕좌로 바꾸고, 거기 앉아 전능자에게 그분이 하셔야 할 일을 지시하려 든다.

이것은 지켜보는 자에게, 만약 하나님의 동정심이 기도하는 자의 동정심의 절반만 돼도 모든 게 금방 바로 잡힐 거라는 인상을 준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옛사람(옛 본성)은 이다지도 오만하다.

이 장의 주된 목적은, 기도할 때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덧붙여야 할 게 있다. 기도는 단순히 경건훈련에 불과하지 않으며, 기계적 행위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기도란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할 때, 우리가 구한 것을 받게 하려고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다. 이 장을 읽은 후, 필자와 독자 모두 이전 어느 때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라고 외치지 않는다면, 필자는 여태 헛수고한 것이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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