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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65]

En Hakkore 2024. 5. 23. 16:02

하나님의 주권과 기도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신 이유 1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부르짖음으로 그분의 뜻을 바꾸지 못한다. 어떤 백성에게 선을 베푸시는게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 때, 아무리 중요한 사람이 아무리 뜨겁고 끈질기게 기도해도 그분의 마음을 그 백성에게 돌리지 못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렘 15:1). 약속의 땅에 들어가길 구했던 모세의 기도도 비슷한 경우다.

기도에 관한 우리의 시각을 고쳐 기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 이 시대에 널리 퍼진 기도 개념은 이런 것이다.

기도란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 내가 원하는 바를 구하는 것이며, 내가 구한 것을 하나님이 내게 주시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추하고 저급한 기도 개념이다. 이러한 대중적인 기도 개념은 하나님을 종으로, 우리의 종으로 전락시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우리의 명령을 행하고, 우리를 즐겁게 하며, 우리의 바람을 채워주는 우리의 종으로 전락시킨다. 기도란 하나님께 나와 그분께 나의 필요를 아뢰는 것이며, 나의 길을 그분께 맡기는 것이며, 그분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대로 처리하시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전자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뜻을 내 뜻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게 된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는 영혼의 외침이 없다면, 그 어느 기도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존 길(John Gill)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백성에게 복을 내리시는 이유는, 마치 이들의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였거나 그분의 마음을 바꾸기라도 한 듯이, 이들의 기도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 때문이며,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인 뜻과 기쁨 때문이다.♡

누군가 "그렇다면 기도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이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자신의 선하심에서 비롯되는 복을 자신의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 지정하신 길이며 방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러한 복을 목적하셨고, 준비하셨으며, 약속하셨을지라도, 그 복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하며, 이것이 우리의 의무요 특권이다. 사람들이 기도의 영을 받을 때, 이것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하나님이 구한 좋은 것들을 주기로 계획하신 것처럼 보이게 한다.

무엇을 구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며 구해야 한다.♡

방금 살펴본 차이는 마음의 평안에 실제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을 때 가장 크게 좌절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했으며, 그들이 말하듯이, 구하는 것을 주시리라 믿고 구했다. 진심으로 거듭 구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그 결과, 많은 경우, 기도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결국에는 소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기도의 골방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 하나님께 드린 진정한 믿음의 기도는 모두 응답되었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기도는 모두 응답되었다고 주저 없이 단언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 기도의 정의를 되짚아 보아야 한다. 우리가 내린 기도의 정의를 되짚어 보자.

기도란 하나님께 나와 그분께 나의 필요를 - 또는 타인의 필요를 - 아뢰는 것이며, 나의 길을 그분께 맡기는 것이며, 그분이 보시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은 육신이 가장 받아들일만한 응답과 전혀 반대일 때가 잦다. 그러나 우리의 필요를 진정으로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이것도 하나님의 응답일 것이다.

두 예를 보자.

요한복음 11장에 병든 나사로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주님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지금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는 주님께 사람을 보내 나사로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이들이 주님께 어떻게 호소했는지 주목하라.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이게 전부였다. 이들은 주님께 나사로를 고쳐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주님께 당장 서둘러 베다니로 오시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단순히 주님께 자신들의 필요를 알렸으며, 상황을 주님께 맡겼고,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행하시게 했다. 주님은 어떻게 답하셨는가? 이들의 호소에 답하여 이들의 말없는 요청에 응답하셨는가? 분명히 그렇게 하셨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셨고"(요 11:6), 그 사이에 나사로는 죽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중에 주님은 베다니로 가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지금 이 사건을 언급하는 목적은 신자가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바른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예는 하나님이 도움이 필요한 자녀에게 응답하시는 방법을 강조한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적 없는 특권을 누렸다. 그는 낙원으로 인도되었다. 바울은 다른 유한한 존재가 죽음의 이편에서 듣고 보지 못한 것을 듣고 보았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이 놀라운 체험 때문에 그는 자만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이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고후 12:7) 그에게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다.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는가? 가시는 제거되지 않았으나 그 가시를 감당할 은혜를 주셨다. 짐은 벗겨주지 않으셨으나 그 짐을 감당할 힘을 주셨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단순히 자기 필요를 하나님 앞에 아뢰는 그 이상을 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백지수표를 주시면서 금액을 써 넣으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것을 포함하며,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구해도 되지 않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생각을 충분히 알려면 반드시 성경과 성경을 비교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기도하는 영혼들에게 주신 약속에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는 말씀으로 조건을 붙이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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