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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54]

En Hakkore 2024. 5. 22. 15:56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2

이제 이러한 문제를 차례로 살펴보겠다. 성령께서 우리의 선생이 되셔서 우리로 빛 가운데서 빛을 보게 하시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자기 능력을 인간에게 행사하여 인간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으시고 대신에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몰아대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보존하시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시면, 인간의 자유가 훼손될 것 같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그들을 초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시면, 인간의 책임이 침해될 것 같다. 하나님이 절대로 인간을 힘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고 강요는 더더욱 안 되며, 그러지 않으면 인간은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이것이 우리가 듣는 말이다. 이것은 그럴듯한 철학처럼 들리고, 견실한 추론에 기초한 듯하다. 사실 윤리학은 이것을 입증된 사실로 여기며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성경은 이것을 반박한다.

창세기 20장 6절을 보자.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절대 침범하지 말아야 하며, 인간을 절대로 강요하여 기계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거의 보편 진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성경 구절은 하나님이 인간의 책임을 파기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게 자기 능력을 행사하시는 게 절대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증명한다.

이 경우에 하나님은 자기 능력을 행사하셨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셨으며, 그러지 않았다면 인간이 했을 일을 하지 못하게 막으셨다. 이 구절에서 눈을 돌리기 전에 이 구절이 어떻게 아담의 경우를 비춰주는지 살펴보자.

지혜롭게 보이려 했고, 기록된 말씀 너머까지 손대려 했던 거짓 철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담의 타락을 막았다면 그를 로봇으로 전락시켰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피조물을 강요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되며,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책임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공허한 모든 철학에게 주는 답은 이것이다. 수많은 성경 기사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백성에게 죄를 짓지 못하게 막으셨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볼 때, 인간의 모든 이성적 추론은 전혀 무가치하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그분께 죄를 짓지 못하게 막으셨다. 그렇다면 아담에게도 똑같이 하실 수 없었겠는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사탄의 타락을 막지 않으셨나요?"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왜 하나님이 사탄의 타락을 막지 않으셨을까요?" "왜 하나님이 독일 황제가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막지 않으셨을까요?" 앞에서 말했듯이, 일반적인 대답은, 하나님이 이들을 막으셨다면 이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간을 기계로 전락시켰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비멜렉의 경우는 이런 추론이 틀렸음을 - 악하고 신성 모독적이기까지 하다 - 반론의 여지없이 증명한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지존자를 제한하겠는가! 어떻게 유한한 피조물이 감히 전능하신 분에게 이건 하셔도 되지만 저건 하시면 안 된다고 말하겠는가!

하나님이 자기 능력을 행사하여 아담의 타락을 막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이냐고 더 다그쳐 물으면, 우리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담의 타락이 하나님의 지혜와 복된 목적에 더 기여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과 더불어, 아담의 타락도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침을 증명할 기회를 주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이 불순종하고 그 열매를 먹을 줄 미리 아셨는데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에 두셨는가? 기억하라. 그 나무를 지으신 이는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그러면 하나님이 악의 조성자인가요?" 우리는 이렇게 반문한다. "조성자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영원전에 작정하신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할 것들만 허용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접겠다. 그렇지만 다시 말하건대, 하나님은 아담의 책임을 파기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타락을 막으실 수도 있었다.

아비멜렉의 경우만이 아니다.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 예가 발람의 이야기에 나온다. 발람의 이야기는 앞장에서 살펴보았지만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압 사람 발락이 사람을 보내 이방인 선지자 발람을 불러오게 했다. 발람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발람에 적지 않은 보상을 제시했다.

민수기 22~24장을 자세히 읽어보라. 발람은 자발적으로 발락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게 죄를 지으려 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하길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발람을 막았다.

발람이 스스로 인정한 사실에 주목하라.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민 22:38).

발락이 발람과 논쟁한 후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민 23:12,20).

이 구절은 하나님의 능력과 발람의 무능력을, 인간의 뜻의 좌절과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발람의 자유나 책임이 훼손되고 파기되었는가? 좀더 살펴보면 분명해지듯이, 절대 아니었다.

예를 더 들어보자.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대하 17:10). 이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 주변 모든 나라를 뒤덮지 않았다면, 이들은 유다와 전쟁을 벌였을 것이다.

이들이 자기 뜻대로 하도록 두었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우리가 보듯이, 성경은 하나님이 개인뿐 아니라 나라도 막으시며, 원하실 때 개입해 전쟁을 막으신다고 가르친다(창 35:5 비교).

이것이 이제 살펴볼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짓지 않도록 막으면서도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침해하시지 않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참으로 많은 사람이, 이것은 현재 우리의 제한된 상태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고 말한다.

이 문제는 우리로 이렇게 묻게 한다. "도덕적 자유, 진정한 도덕적 자유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죄악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한 영혼이 죄의 도덕적 속박에서 벗어날수록 자유 상태에서 깊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앞의 경우에서, 하나님은 아비멜렉, 발람, 이방 나라가 죄를 범하지 못하게 막으셨고, 이들의 진정한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셨다. 한 영혼이 무죄 상태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의 거룩에도 가까워진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못하시고 유혹을 받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악한 일을 못하시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덜 자유하신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그의 진정한 자유가 커지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만나는 점을 설명하는 적절한 예를, 이것이 도덕적 자유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전달하실 때,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단순히 자동 대필 기계로 전락시키지 않으셨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헬라어-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여기서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이 연합한다. 이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에 감동되었다(헬라어-붙잡혔다). 그러나 이들의 도덕적 책임은 침해되지 않았으며, 이들의 자유도 훼손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들의 생각(지성)을 조명하셨고, 이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셨으며, 이들에게 자신의 진리를 제시하셨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이들을 제어하심으로써 이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인간에게 전달할 때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자신의 능력으로 막으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용하신 사람들을 제어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오류를 일으켰겠는가?

죄다. 이들속에 있던 죄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 하나님이 이 거룩한 사람들 속에서 죄를 억제하시고, 육신의 생각이 활동하지 못하게 막으셨다고 해서 이들의 자유가 박탈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은 진정한 자유의 서막이었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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