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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31] 고난의 말씀 3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31] 고난의 말씀 3

En Hakkore 2024. 5. 16. 12:46

고난의 말씀(The Word of Suffering)

3.주님은 성경을 깊이 존중하셨다

놀랍게도 구주의 생각은 성스러운 예언들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대로만 사셨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 "복 있는 사람"이었다(시 1:2).

글로 기록된 말씀은 그의 사상을 형성했고, 그의 마음을 채웠으며, 그의 길을 지도했다. 성경은 아버지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며, 항상 그의 기쁨이었다. 시험을 받을 때 기록된 말씀이 그의 방어 수단이었다. 가르칠 때 하나님의 법이 그의 권위였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시면서 항상 율법과 십계명에 호소하셨다. 그리고 지금 죽어가는 시간에 그의 생각은 진리의 말씀에 거했다.♡

구주의 다섯 번째 말씀의 진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 19:28). 이에 대한 언급이 시편 69편에 있다. 시편 69편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생하게 그려낸 메시야 시편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예언의 영은 선포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21절). 이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앞 절의 예언은 이미 다 완성되었다. 그는 "깊은 수렁"에 빠졌고(2절). "무고히" 미움을 받았으며(4절), 훼방과 수치를 당하였고(7절),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8절), 조롱자들의 "말거리"가 되었으며, "취한 무리의 노래"가 되었다(11-12절).

하나님께 근심을 부르짖었다(17-20절). 이제 초와 쓸개를 마시도록 받는 것 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고, 이를 이루기 위해 주는 외치쳤다. "내가 목마르다."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구주는 흐트러짐 하나 없이 침착하셨다!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지만, 그의 정신은 분명했고, 그의 기억력은 손상되지 않았다. 아주 또렷한 정신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진리를 기억해 내셨다.

메시야의 예언을 전체적으로 짚어보셨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이 하나 있는 것을 생각하셨다. 어느 것 하나도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다. 이는 그가 신성으로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이 부분에서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점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구주께서 삶과 죽음에서 어떻게 성경의 권위를 따르셨는지 이야기했다. 주님을 따르는 당신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책이 당신에게 최후의 판단 기준인가? 성경에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발견하는가? 성경이 당신 발의 등인가? 다시 말해서,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계명이 당신을 제어하는가? 진정으로 순종하고 있는가?

다윗처럼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시 119:30-31, 59-60).

구주처럼 당신도 성경을 이루기 위해 고심하는가? 이 글을 쓰는 나나 읽는 당신이나 모두 진심으로 기도하여 은혜를 간구하길 소망한다.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겨워함이니이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행치 말게 하소서...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시 119:35-36, 133).

                            "내가 목마르다."

4. 구주께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다

구주가 목마르셨다. 목마르신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능력을 가지신 분임을 기억하라. 전능하신 능력을 행하시려고 했다면 필요한 것을 손쉽게 충족하실 수 있었다. 구약에서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갈시키기 위해 바위를 내리쳐 물을 내신 그분이 지금 자신의 갈증을 풀기 위해 똑같은 능력을 무한히 쓰실 수 있었다.

말씀으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이라면 여기에서도 능력의 말씀으로 자신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자신의 유익과 편리를 위해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었다. 사탄이 시험하면서 기적을 행하라고 유혹했을 때도 그는 거절하셨다.

왜 이제 와서 절박하게 필요한 것을 얻으려 하셨는가? 왜 입술이 타들어가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나?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 성경 말씀에 그는 목이 마를 것이며, 그로 인해 마칠 초를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 그렇게 복종하셨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죽음에서도 주 예수께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었다. 시험을 받으시면서도 삶의 지표였던 말씀에서 벗어나 자신의 필요를 채우가 위함이 아니라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심이다.

예언을 직접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도록 맡겨 드린다. 그러나 말씀이 이루어질 기회를 만들고자 고통을 언급하신다. 누군가 말했다. "십자가 위에서 타들어 가는 갈증을 느꼈지만, 그것 때문에 바짝 마른 입술을 움직여 말하지 않는다.

'내가 목말랐을 때에 그들이 나에게 마실 초를 주었다'는 말씀 때문에 타들어 간 입술을 연다"(F. W. Grant). 항상 그러셨듯이 여기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신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저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시자 초가 주어지고 예언은 이루어진다. 완벽하게 하버지의 뜻에 몰두하셨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자. 이중적인 가르침이 있다. 우선, 주 예수는 갈증의 고통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뜻을 기뻐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아버지께 복종하는가?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고백하며 은혜를 구한 적이 있는가? "내 뜻이 아니더라도 당신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에"라고 외칠 수 있는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빌 4:11) 배웠는가? 지금 대조해 보라.

하나님의 아들은 고통을 덜어 줄 시원한 물 한 모금도 거절당하셨다.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덜어 주기 위해 다양한 음식물들을 주셨지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주 그 은혜를 망각하는가! 목마를 때 한 잔의 물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감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이 절규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하찮게 여겼던 것들로 인해 하나님을 송축하고 일상적인 자비로 인해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영광의 주님은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셨지만, 가장 힘든 순간에 목조차 축일 수 없으셨다.

세상의 축복과 영적인 자비를 수없이 차버리는 당신은 일상적인 섭리의 은혜를 하찮게 여기지 않았는가! 물 한 잔을 받으면서 불평하는 이는 진노의 잔을 받아 마땅하다! 이를 마음에 새기고 비록 가진 것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뿐일지라도 자족하는 법을 배우라.♡

누추한 집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불평하지 말라. 구주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 먹을 것이 빵뿐이라고 불평하지 말라. 구주는 40일 동안 빵조차 없으셨다. 마실 물뿐이라고 불평하지 말라. 구주는 죽음의 시간에 물조차 거절당하셨다!

                        "내가 목마르다."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