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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29] 고난의 말씀 1 본문

가상 칠언, 그 의미와 적용

[가상칠언 29] 고난의 말씀 1

En Hakkore 2024. 5. 16. 12:29

고난의 말씀(The Word of Suffering)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요한복음 19:28

"내가 목마르다." 고난을 당하시는 구주가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데,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신성(神性)도 드러내는 말씀이기에 기록되는 것이 타당하다.

"내가 목마르다." 감동적인 설교 한 편에 버금가는 구절이다! 짧지만 포괄적이고 표현이 풍부하며 비극적이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이가 입술이 마르셨다! 영광의 주께서 한 모금의 물이 절실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외치신다! "내가 목마르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다! 이 무슨 말인가! 영감을 받지 않고서는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없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다윗을 감동시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 69:21). 이 얼마나 놀랍도록 완벽한 예견인가! 중요한 것은 하나도 빠진 것이 없었다.

위대한 비극에서 중요한 세부 사항은 모두 다 미리 기록되어 있었다.

가까운 친구의 배신(시 41:9). 당황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림(시 31:11), 무고(誣告; 시 35:11), 재판관 앞에서 침묵하심(사 53:7), 무죄로 밝혀짐(사 53:9), 범죄자로 헤아려짐(사 53:12). 십자가에 못 박힘(시 22:16), 구경꾼들의 조롱(시 109:25),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시 22:7-8), 옷 때문에 제비뽑음(시 22:18), 원수들을 위한 기도(사 53:12), 하나님께 버림 받음(시 22:1), 목마름(시 69:21), 아버지의 손에 영혼을 맡기심(시 31:5), 다리를 꺾지 않음(시 34:20), 부자의 무덤에 장사됨(사 53:9).

이 모든 일들은 이 일들이 일어나기 몇 세기 전에 명확하게 예언되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이다! 그의 탁월한 말씀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 얼마나 견고한가!

"내가 목마르다." 이것이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하신 일곱 마디 말씀 중에 하나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귀중한 의미를 지닌 말씀이며, 우리 마음속에서 보석처럼 빛날 말씀이며, 오랜 시간을 두고 묵상할 가치가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구주가 극심한 고통 가운데 하신 말씀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이 되고 있다. 물론 이것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무엇을 헤아려야 하는가? 다섯 번째로 하신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가 말씀에 집중하려고 애쓸 때에 진리의 영께서 우리의 이해를 밝혀 주시길 소망한다.♡

"내가 목마르다."

1. 그리스도의 인성을 보여 준다

주 예수는 온전한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또한 온전한 인간이셨다. 이것은 믿어야 할 것인지 이성으로 헤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구주의 인성은 지성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앞에서 우리는 머리 숙여 경배해야 한다.♡

그는 우리에게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도 없고"라고 말씀하셨다(마 11:27). 또한 하나님의 영이 사도 바울을 통해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라고 선포하신다(딤전 3:16).

우리의 머리로는 그리스도의 인성 중에 많은 부분을 헤아릴 길이 없지만 그의 모든 것은 존경할 만하며 사랑스럽다. 주님의 신성과 인성은 가장 뛰어나며 그 둘이 하나의 인격체 속에 완벽한 연합을 이룬다. 주 예수는 신적인 사람이나 인간화된 하나님이 아니셨다.

그는 하나님이자 사람이셨다.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세상에서는 영원한 사람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성육신하셨을 때 비록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나누셨던 영광은 잠시 벗으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이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특성 그 어느 것도 잠시 접어두지 않으셨다.

그러나 성육신을 통해 말씀은 육신이 되셨고 사람 사이에 거하셨다. 그는 이전의 모습을 하나도 버리지 않으셨지만 이전에는 없었던 완벽한 인성을 취하셨다.

구주의 신성과 인성 모두 메시야 예언에서 다루어졌다. 예언은 오실 자를 때로는 신으로 때로는 인간으로 나타냈다. 그는 "여호와의 싹"이었다(사 2:4). 기묘자, 전능하신 하나님, (히브리인들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었다(사 9:6).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는 그 근본이 상고에, 태초부터 있었다(미 5:2).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여호와 자신이셨다(말 3:1).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여자의 후손이었다(창 3:15). 모세와 같은 선지자(신 18:18), 다윗의 몸에서 날 아들이었다(삼하 7:12-13).

그는 여호와의 "종"이었다(사 42:1). "질고를 아는 자"였다(사 53:3). 그리고 신약에서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예언들이 일치되고 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이가 하나님의 말씀이셨다. 성육신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으로 현현하신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이전의 모습은 하나도 버리지 않은 채 이전에는 아니었던 모습이 되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7).

베들레헴의 아기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셨다. 그는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 그 이상이었다. 그는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셨다. 두 개의 분리된 인격이 아니라 두 개의 본성, 신성과 인성을 소유한 하나의 인격체였다.♡

이 세상에 계실 때 주 예수는 자신의 신성을 확실히 보여 주셨다. 하늘의 지혜로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행하셨으며, 신의 능력을 보여 주셨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셨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사람들의 의지를 이끄셨다.

그가 능력을 행하려고 하셨을 때 모든 자연은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그의 입에서 한 마디 말씀만 나오면 병이 떠나고, 폭풍우가 잠잠해지며, 사탄이 떠나고, 죽은 자가 살아 일어났다. 분명히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셨기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고"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거하시는 동안, 주 예수는 자신의 인성, 죄없는 인성도 확실히 보여 주셨다. 그는 이 세상에 아기로 "강보에 싸서" 오셨다(눅 2:7). 어린 아이였을 때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눅 2:52), 소년이었을 때는 "묻기도" 하셨다(눅 2:46).

성인 되셨을 때는 육체가 "곤하기"도 하시고(요 4:6), "금식"도 하시고(마 4:2), "주무시더니"(막 4:38), "이상히"여기시기도 하셨다(막 6:6).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기도"하셨다(막 1:35). "기뻐"하기도 하시고(눅 10:21),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기도"(요 11:33) 하셨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셨다.

이것이 인성의 증거였다. 하나님은 갈증을 느끼시지 않는다. 천사도 마찬가지이다. 영광 중에 있는 우리도 그럴 것이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계7:16).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간이기에, 슬픔이 가득한 세상에 살기에 목마르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스도도 인간이셨기에 목마르셨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

                         "내가 목마르다."

Arthur W. Pink 가상칠언 그 의미와 묵상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