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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58] 사울에 대한 승리(사무엘상 2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58] 사울에 대한 승리(사무엘상 24장)

En Hakkore 2024. 2. 18. 11:42

다윗의 말에 대한 사울의 반응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네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삼상 24:16).

사울은 그동안 다윗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고 잔인하게 그를 추격해 왔다. 하지만 이제 자기가 쫓던 자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자기에게 복수를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자 그는 마음이 움직여 눈물을 흘렸다.

엘리사에 의해 일시적으로 눈이 먼 아람의 군사들은 자기들이 곧 살해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 왕은 그들에게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 보냈다." 적들에게 그런 친절을 베푼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무리들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않았다"(왕하 6:20-23). 이런 사건들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큰 교훈이 되기를!🤞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우리 모두 잠시 하나님의 제어하시는 능력을 찬양하자. 원한과 분노로 가득차 그토록 다윗의 목숨을 노렸던 사울은 이제 그를 죽이려 하기는커녕 조용히 멈춰 서서 다윗이 하는 말에 방해하지 않고 들었다.

바람과 물결을 향해 명령하시는 분은 그분이 기뻐하실 때 사람의 마음 안에서 요동치는 가장 거센 폭풍도 잠잠케 하실 수 있다. 더구나 사울은 단지 놀라고 누그러졌을 뿐 아니라 다윗의 친절에 녹아내렸다. 그의 말이 얼마나 놀랍게 바뀌었는지 주목해 보자.

전에 그는 다윗을 "이새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는 그를 향해 "내 아들 다윗아"라고 부르고 있다. 왕은 너무 깊은 감명을 받아서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그의 눈물은 에서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참된 회개의 눈물이 아니었다.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삼상 24:17).

사울은, 그 옛날 바로가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다"(출 10:16)라고 말했던 것처럼, 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에게 악을 선으로 갚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 깊은 인상을 받을 때 자기들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처럼, 다윗의 고결함과 자신의 사악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보다 좋은 것을 향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런 시인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럼에도 사울의 이런 시인은 하나님이 그분의 종에게 소망을 두게 하셨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6).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는"(행 24:16) 자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양심을 안전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이 훌륭한 고백은 다윗의 무고함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다윗의 적들이 판단하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울 자신이 참된 회개자임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너는 의롭고, 나는 악하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기껏 인정한 것은 '너는 나보다 의롭다'였다. 악한 사람은 대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때도 이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다른 누군가처럼 선하지도 않고, 자기들보다 훌륭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있음을 겨우 인정할 뿐이다"(Matthew Henry).

아, 우리가 자신에게서 자신의 모든 헛된 선함을 벗겨내고 자기가 죄인임을 자인하며 땅에 꿇어 엎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알어나야 한다.

또 우리가 계속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진실된 마음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 115:1)라고 외치기 위해서는 성령의 계속적인 갱신의 역사가 필요하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삼상 24:18).

이것은 놀라운 말이다. 가장 타락한 죄인조차 때로 자신이 받은 친절함 때문에 마음이 누그러진다. 사울은 다윗이 만약 자기들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자기가 그에게 했을 것보다 훨씬 더 자비롭게 자기를 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그를 오해했음을 시인했다. 다윗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거나 훗날 드러난 그들의 참모습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많이 과장해서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오해가 풀렸을 때 우리는 지금 사울이 하는 것처럼 우리가 전에 그들에 대해 품었던 근거없는 의심을 겸연쩍게 떠올리곤 한다"(Matthew Henry).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나중의 결과에 비추어 본다면, 이런 말 또한 매우 엄중하다. 사울은 다윗의 넓은 도량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역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자신이 목숨을 노렸던 사람의 손에 떨어졌던 것을 다름 아닌 여호와의 손길 때문이었다고 시인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니 그 누가 그와 맞서서 이길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사울로 하여금 다윗을 해하려는 노력을 그치게 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의 선함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호 6:4) 같았다.

아, 많은 이들이 자기들의 죄에 대해 슬퍼하지만, 그것들에 대해 진정으로 회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통해하며 울지만, 여전히 그런 잘못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에 집착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고 시인하지만, 여전히 그분께 순복하지 않는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