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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57] 사울에 대한 승리(사무엘상 2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57] 사울에 대한 승리(사무엘상 24장)

En Hakkore 2024. 2. 18. 11:41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23).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주님께 귀히 여김을 받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스스로 행복하며,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강력한 위인들보다도 훌륭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를 정복했으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그의 가장 좋은 친구들을 살해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울화를 쏟아내기 전에 시간을 갖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적당한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강력한 전사보다도 귀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다.

이성적인 피조물에게는 야만스러운 힘에 의한 승리보다 이성에 의한 승리가 훨씬 더 명예롭다. 가장 바람직한 권위는 자기를 다스리는 것을 통해 온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통제되지 않은 열정을 정복하려면, 물리적 힘을 사용해 적에게 승리를 거두는 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규칙적이고 일관성 있는 자기 관리가 요구된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적의 성채를 빼앗는 것보다 중요한 성취다. 자기의 기질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요새화된 성읍을 성공적으로 급습할 수 있는 사람보다 우월하다. 생래적 용기와 재능과 인내를 가진 자는 후자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사건에서 예시된다. 다윗은 사울로 인해 크게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적의 목숨을 거둘 수 있었을 때 관대하게 그를 살려 주었고 악을 선으로 갚았다.

용서를 통한 승리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잠 15:1). 이 교훈은 이제부터 우리가 살필 내용에서 놀랍게 예증된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가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는, 설령 다른 이가 분쟁을 일으키더라도, 그 분쟁을 지속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문제를 누그러뜨림으로써 그것을 끝내기 위해 애써야 한다.

불에 기름을 붓는 것보다는 요동하는 물 위에 기름을 붓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약 3:17).

우리는 매사에 모든 합리적인 양보를 통해 사람들의 원한을 가라앉혀야 한다. 친절하고 겸손하게 전하는 부드러운 말과 표현은 비통함을 가라앉히고 분노의 폭풍을 흩뜨릴 것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의 분노가 기드온의 부드러운 대답으로 인해 얼마나 누그러졌는지 주목하라(삿 8:1-3).

가장 고귀한 용기는 우리가 자신의 타락에 맞서고 우리의 적들을 친절함을 통해 정복할 때 나타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눅 11:4). 다른 사람에 대한 이런 용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복수심을 억누르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골 3:13).

용납과 용서는 서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연관되어 있다. 혹자는 "나는 그가 내게 한 것만큼 그에게 갚아 줄 것이다"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 24:29).♡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보복을 갈망하며 그런 쪽으로 기울어지는 강한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은혜는 그런 성향을 억제한다. 인간은 잘못이나 손해를 참는 것을 열등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람에게 자신과 자신의 적에 대한 참된 승리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그것, 즉 복수를 삼가는 것이다.

본래 우리의 정신 안에는 격하고, 복수심에 불타고, 악을 악으로 갚고자 하는 성향이 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성향을 거부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열정에 굴복하는 것은 도덕적 나약함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의 적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어 우리가 복수를 위해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만든다면, 그때 우리는 그에게 완전히 재압당하는 셈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는 명령을 받는다. 그렇게 할 때 은혜가 승리할 수 있고, 우리는 고귀하고 용감하고 강한 정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증명한 것으로 인해 우리에게 놀랍게 복을 주실 것이다. 종종 하나님은 잘못을 행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 그에게서 상처를 입은 사람이 드러내 보이는 온유함과 관대함을 통해서 그를 정복하신다. 곧 살펴보겠지만, 다윗과 사울의 경우가 그러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241

• 사사기 8장 1-3절.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것에 비교 되겠느냐 기드온이 이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