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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78] 체험적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78] 체험적 연합

En Hakkore 2024. 5. 1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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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양한 면을 가진 이 주제 중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면, 즉 타락한 자도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좀더 설명해 보는 데 대하여 독자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타락한 친구들을 돕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처음 1, 2년간은 매우 열심이고 열정적이다가 그 다음에는 냉담하고 무심하고 반쯤은 세상적이거나 혹은 이생의 염려로 짓눌려 버리는 자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이런 경우는 흔히 부분적인 파멸을 일으킨다.

그들은 자신이 '완전히 실패' 했으며 그리스도와의 매일의 친교는 자기와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 짓는다. 겸손하게 자기의 실패를 주님께 고백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용서와 은혜의 새로운 공급을 구하는 대신에 그들은 멈추어 서서 생애의 남은 날들을 슬퍼하며 보낸다.

우리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은 그 정도가 심하든 그렇지 않든 사단의 포로가 되어 회복의 방법을 전혀 모르는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대책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종의 의무이다.♡

이것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타락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행위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불명예스럽게 되고 계시며 그들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충성스럽고 친절하게 지적해 주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복을 위해 약속해 주신 방법들을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그때 우리에게는 미혹한 자를 용납하시고(히 5:2)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며 또 기꺼이 그렇게 하실 위대한 대제사장이 계시다는(히 7:25)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어떤 이는, "그렇지만 주님은 내게 자기 모습을 감추셨어요. 그래서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한 반대에 대한 대답은 은혜의 대헌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렘 32:40).

주님은 당신에게서 자기의 미소와 위안을 거두셨으며 당신은 그것을 괴로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바로 복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 괴로움을 통하여 당신은 왜 그가 생소하게 보이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을 겸손하게 하여 진실되고 뉘우치는 고백을 통하여 그분 앞에서 당신은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사 57:17, 18).

당신을 때리신 것은 아버지의 징계였지만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고 그는 당신을 고치시고 위로해 주려고 하신다. 아마 또 다른 두려움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얼굴을 숨기셨을 뿐 아니라 자기를 이미 버리셨다는 것이다. 그는 당신의 감각과 느낌에는 그렇게 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은혜로운 목적에는 변함이 없으시다.♡

비탄에 빠진 당신에게 그가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들어 보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7, 8).

그 말은 당신의 의심을 잠잠케 하지 않은가? 이것과 같은 말씀은 믿음의 시련을 받고 있는 당신을 보호하고 그로부터 건져내는 데에 참으로 잘 적용되지 않는가? 불신의 구름이 흩어지고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는 모든 탕자를 사랑하고 충심으로 환영하신다는 것을 당신이 다시 확신할 때까지 그 말씀을 되풀이하여 읽으라.

그러나 아마도 어떤 독자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내 처지는 훨씬 더 절망적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진노하셨으며 그것은 정당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고 나는 그의 손에서 더 이상 친절을 바랄 수 없습니다. 한때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신다고,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한다고 진실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옷을 더럽혔고 큰 죄에 빠져 나의 신앙고백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내 양심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라고 자신을 비난합니다. 나는 고의로 나의 특권을 비웃고 빛과 양심의 가책을 거슬러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진실로 참되이 중생한 자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아, 사랑하는 친구여, 그러한 처지가 참으로 슬프다고 할지라도 당신이 하는 믿음은 버림받은 자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당신은 진흙탕에 떨어졌지만 당신은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결심인가? 당신은 죄짐에 눌려 있지만 그것을 끌어안고 다시 죄를 더 짓겠는가?

당신이 아무리 사악하게 타락한다 할지라도, 당신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풍부한 구원을 신뢰할 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참되이 그것에 대해 겸손해질 것이다.

여기에서, 절망적인 처지에도 효력이 있는 위안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현명한 일인가? 라는 반대의견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자기 의를 내세우는 바리새인만이 그런 질문을 할 것이므로 이에 대해 답변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그런 질문으로 인하여 마음이 혼란해진 사람을 위해서, 성경에는 그에 대해 계시한 것이 없으며 사악한 자가 그것을 곡해할 수 있다는 것을(벧후 3:16) 지적해 보자. 진리가 아무리 신중하게 나타나지고 아무리 언어를 삼가해서 사용하고 아무리 조화있게 표현한다 해도,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은 자들은 스스로 멸망에 이르기 위하여 그것을 곡해한다.

몇몇 하나님의 종들이 이 사실을 좀더 명확히 깨닫지 못하고 이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크게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자기의 말이 잘못 사용되어지지는 않을까 혹은 자기의 가르침이 '위험'하다고 비난받지는 않을까 몹시 두려워하므로 말을 하지 않고 때로 '자녀들의 떡'에서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부분을 숨겨버린다.

성령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되려고 하지 말자.♡ 그는 가장 악명높은 죄인과 지극히 사악하게 타락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말해 주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여기에는 우리를 위한 지침이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두시는 높은 표준과 그의 거룩함을 절실히 필요로 해야 함이 표현되어 있다.♡ 둘째로, 하나님의 표준에 슬프게도 달하지 못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대책과 하나님의 자비의 자유로움이 분명히 선포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순서이며 우리가 준수해야 할 '균형' 이다. 첫째로 하나님의 변함이 없으신 요구를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와 함께 강조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타락한 백성을 위한 은혜로운 대책을 자세히 이야기해야 한다.

'만일 누가 (하나님의 자녀)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시거나 그들의 구원을 취소하시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 아버지 앞에서 대언해 주시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이해했을 때만이 타락한 자의 마음이 녹을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