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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64] 체험적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64] 체험적 연합

En Hakkore 2024. 5. 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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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체험' 은 어감상 아주 유사하지만 많은 차이점이 있다. 참되고 정상적으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그리스도인의 체험'은 대개 죄와 자아에 대해서 더욱 깨닫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비참해지고, 혐오감을 느끼고, 공허해지고, 무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에게 그리스도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스도가 요구하시는 합당한 일은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너무도 그리스도를 생각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련한 심령은 매우 변하기 쉽고 침울하고 불안하고 여러 가지 불안과 슬픔으로 고통을 받는다.

우리가 속에서 역사하는 죄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슬픔을 느낄 때 우리는 대개 괴로워하게 된다. 그렇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에 관하여 판단을 내리고, 우리는 본래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겨 놓으신 문제이다.

우리가 낙심하고 슬플 때 그리스도께로 돌아가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시 119:132)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그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를 영예롭게 하며 그를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일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라.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틀림없이 당신의 필요를 알고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절망하게 될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께서 그의 은혜를 보여주시고 그의 긍휼을 나타내 주시고 그가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모든 충족성을 나타내주시고 우리가 그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우리를 향하고 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사 49:15, 16)라고 그는 선언하신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찌하여 그의 사랑을 의심하고, 혹은 당신을 기꺼이 자비롭게 맞아들이고 인내심있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당신을 깨끗케 하려는 것을 의심하는가? 죄로 괴로워하는 형제여, 죄로 슬퍼하는 자매여, 아무도 동정하는 사람이 없을 때, 맨 처음 당신을 찾으셨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

당신은 무궁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으셨나이까? 당신이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당신이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요, 당신이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당신이 째찍에 맞으므로 내가 나음을 입지 않으셨습니까?(사 53:5)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그리고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호 14:2, 4)"

나의 그리스도인 친구여, 당신 영혼이 슬퍼하는 이 통탄할 만한 타락들을 수용하시고, 그가 '현재보다도 더욱 친밀한' 친구라는 사실을 우리로 스스로 알게 하려고 하신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이 세상의 친구들은 우리를 버리고 떠날 수도 있다.

그들은 어느 날 우리를 위로하다가도 다음날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고 참으로 사랑하시는 한 분이 계신다. 그리스도와의 체험적인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씻음을 받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상술하기로 하고 우선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하여 은혜로 많은 것을 준비해 두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즉, "만일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 구절은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8절)라는 말씀에 이어 곧바로 나오는 구절임을 주목하라.

때때로 새롭게 회심한 영혼은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게 됨에 따라서 불의는 그 사악한 모습을 감추고 있고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재하는 부패 자체는 곧바로 다시 드러난다. 하지만 교만하여 그것을 기꺼이 인정하려 하지 않고 유혹에 빠져 그것을 속이고 죄라는 이름보다는 더 듣기 좋은 이름으로 부른다.

사랑하는 친구여,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 즉 속임수와 거짓 가운데서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 꾀어들이려는 사단의 시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반드시 물리쳐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이라는 말은 '빛 가운데서 행한다'는 뜻이다. 그에게 '우리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그에게 우리의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많으시고 지혜로우신 의사에게, 즉 유일하게 우리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 계신 분에게 우리의 속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영혼의 모든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시다' 즉 그는 당신의 상처를 소홀히 다루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당신이 죄악들을 자백하도록 도와주실 것이고, 당신으로 하여금 그 죄악들을 증오하게 할 것이다.

당신이 주님과 함께 이 일을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계속한다면, 그는 당신을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불의로부터 깨끗케' 하실 것이다. 즉 거짓과 속임수로부터 구원해주며, 죄악을 숨기지 않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에서 행하면 행할수록, 우리는 자신이 비천한 피조물이라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으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욱 친밀하게 교제를 하면 할수록, 그는 우리로 '하찮은 일'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심각한 죄라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죄들을 솔직하게 뉘우치며, 매일같이 '자백'한다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죄를 사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내적인 진실을 요구하시고, 거짓과 겉치레는 관대히 다루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상기하라.♡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워할 것이 없을 만큼 철저하게 부끄러워하며 주님께 죄악을 고백하였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것은 교만이요 불신이다. 베드로가 잘못한 형제에 대해서 '일곱 번 용서해 줄까요' 라고 물어보았을 때, 주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하라' 고 대답하셨다.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큰 은혜가 아닌가!

오, 나의 그리스도인 독자여, 이 죄인의 친구에게 더욱 자주 나오며 주님의 약속을 더욱 완전히 신뢰하라. 그러면 그는 당신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