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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37] 신비적 연합 10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37] 신비적 연합 10

En Hakkore 2024. 5. 8. 11:44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가 가진 초창조적 탁월함, 즉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지체들이 선택되고, 그리스도에게 연합이 되어 신령한 모든 복으로 복 받았음에 대하여 살펴왔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이자 신부인 교회가 지닌 본래의 순결함과 위엄과 영광을 깨닫기 어렵게 하는 베일이 죄로 인해서 드리워졌음을 지적해야 한다. 우리는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와 생각 속에서 교회가 어떠하였는지를 깨닫는 것보다 우리의 파멸과 불행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과 순종과 희생에 의해서 우리가 죄로부터 구속받는다는 것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초월적이고 영광스러운 진리의 개념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진리의 성경이 그 점에 대해 계시해 준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거기서 믿음을 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우리가 성령의 빛 안에 있는 빛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께서 우리의 이해력에 빛을 비추어 주기를 기뻐하실 때만 가능하다.

이브가 금지된 열매를 먹기 전에, 처녀적 순결 상태에서 아담에게로 연합되어 그의 아내가 되었듯이 하나님의 뜻과 영원하신 계획 안에서, 교회는 타락에 대한 예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결혼하였다.

이브가 하나님의 금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녀의 원래의 고결함에서 타락하여 원래의 아름다움을 상실하였듯이, 교회는 그의 일체적 머리(아담)가 그의 창조주를 저버렸을 때 모든 인류의 변절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무한한 예지 속에서 하나님은 타락을 미리 보시고 그것을 허용하기로 예정하셨으며 타락에 대한 이 통찰 위에, 하나님은 택함받은 자의 영적 머리인 그리스도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성취하신 일을 통하여 타락의 파멸에서 그들을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이 계약 안에 영원한 경이이며 하늘에서는 영원까지 성도의 찬미를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뛰어난 지혜가 나타난다고 보여진다. 아담 안에서, 교회는 순결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창조 상태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교회는 아담의 첫 범죄 행위로 인하여 그 창조적 순수와 거룩과 의로움으로부터 타락하였고 그 자신의 상태와 인격 안에 있게 되어서 불순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하다고 여겨지게 되었다(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의 영원한 지위와 신분에서 떨어진 상태에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택함받은 자들은 다른 이들과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기록되어 있다(엡 2:3). 즉 죄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비추어볼 때 그들의 본성은 혐오할 만한 것이며, 하나님의 정의에 비추어서는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이며 남편이고, 주인이신 구원자께서 실제로 성육신하셔서 인성을 취하여 그 안에서 인격적으로 임시로 거주하며 모든 죄책과 함께 자기 백성의 죄악을 자신에게 전가한 것은 바로 교회를 죄와 불행 상태에서 구원하거나 구해내고, 교회에게 정해 있었거나 예정되어 있었던 원래의 지위와 영광의 즐거움으로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길 없는 사랑과 놀라운 겸손뿐만 아니라 신비한 아내와 그녀의 하늘의 남편 사이에 교회의 그의 머리에 대한 정확한 일치가 있도록 계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담 안에서 택함받은 자들이 타락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베일이 드리워져 그들은 자신의 파멸된 상태에서의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자신이 주님의 것임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본래 상태에서는 선택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할 수는 없다.

즉 그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3).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이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는 대상임을 나타내 줄 어떤 특별한 표지를 지니고 있지 못하며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신부임을 보여줄 수도 없다.

그 대신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모든 것이 다 그 반대이다. 그들은 죄악 속에서 형체가 이루어졌으며 죄 중에 잉태되었고 주님께 공개적으로 반역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그에게도 베일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나님이자 인간으로서 그는 "창세 전에"(요 17:5)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누리셨으며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축복된 삶을 누리셨다. 그러나 그는 그 영광을 내버리고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그 베들레헴의 아기가 하늘과 땅의 창조주라는 어떤 표시가 있었는가? 그의 생명을 해하려는 악한 시도와 그 결과로 애굽으로 도망간 것을 생각해 보라. 그가 전에는 천사 무리의 섬김을 받으신 분이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이라도 있는가?

또한 그 후의 그를 보라. 그는 나사렛의 요셉과 마리아의 오막살이에 살고 계셨으며 그의 어릴적 친구들 어느 누가 그를 하나님의 성육신한 아들이었다고 상상할 수나 있었겠는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그를 보라. 그는 목수의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곳에 있는 그를 여호와의 '동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만물 중에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을 때(히 2:17) 의의 태양이 잠깐 빛을 잃은 것이 아니겠는가?

영광의 주님께서 성육신하셨을 때, 주님은 구름에 덮이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본질적인 영광, 즉 자신의 인격의 위엄에 마땅한 영광의 빛을 가리우고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즉 섬김을 받으려고가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신부를 구하고 신부의 결함과 얼룩을 씻으려고 하셨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깊이가 있다. 즉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이 '아무 명예도 없이' 인간의 모양을 취하시고 '율법 아래에' 계셨고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에조차 순종하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다.♡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육체로 거하시는 그분 안에서 나오는 빛은 변화산상에서 비췰 때를 제외하고는 얼마동안 가리워졌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은혜가 아닌가! 이것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에게 영원히 놀라움을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지금 우리의 마음은 아주 희미하게만 감동을 받을 뿐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