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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18] 제3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18] 제3장

En Hakkore 2024. 5. 2. 12:24

히브리서 13:20, 21(III)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이 기도에서는 어떤 일에 대해서 인간적인 측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암시해 주고 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내용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의무와 관련되어 있다(그러나 그 일을 행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 영원한 언약은 죄가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그 죄를 제거할 방도를 세우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의를 도입시킬 방법까지도 계획하신 것이다. 그 의란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의미하는데 그것에 의해서 하나님의 율법이 존귀케 되고 크게 되었다. 그런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모든 믿는 자에게 전가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성령이 그들의 영혼 안에 의의 원리를 심어줄 때까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지 못할 것이다(엡 4:24). 그리고 의의 새로운 본성 또는 원리가 선한 일(엡 2:10)을 수행함으로써 스스로 입증된다. 만일 우리가 의를 개인적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요일 2:29), 우리는 주 예수를 "우리의 의로우신 주"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그 영원한 언약은 그것의 혜택을 받은 자들의 순종의 필요성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이고 강력한 동기를 충분히 공급해 주고 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며(갈 5:6), 그 믿음의 대상을 기쁘시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가 규칙적으로 기도하면 할수록 점점 더 우리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성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법도가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에 따라 간구하게 될 것이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면서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라고 선언하였으며, 즉시 그가 그의 잘못을 깨닫고서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시 119:4, 5)라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속에 거하는 죄의 방해물을 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서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시 119:33, 35)라고 부르짖는다. 그래서 또한 다윗은 주 앞에 그의 집을 세워 주시기를 요청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간청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소서"(삼하 7:25; 왕상 8:25; 대하 6:17을 보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더 친밀하게 되고 우리 앞에 보여주신 행위의 높은 표준에 세목을 알게 됨에 따라 우리는 우리들 각자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더욱 더 분명히 그리고 열심히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자비의 아버지"(고후 1:3)와 그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벧후 1:4)와 그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벧후 1:4)을 더욱 잘 알게 됨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공급받기 위하여 더욱 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이다.♡

영적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기도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여기에서 온전케 하사(make perfect)라는 말의 원래 헬라어는  카타르티즈(katartizo)인데, 제임스 스트롱(James Strong)은 그것을 철저하게 완성하다(to complete throughly), 즉 수선하다(to repair), 정비하다(to adjust)라고 정의하고 있다.

히브리서 2:10, 10:1, 14, 11:40에서 사용된 텔레이오(teleioo)란 말과 비교해 보자. 스트롱에 따르면 그것은 성격상 완성하다(to complete), 성취하다(to accomplish), 완전하게 하다(to comsummate)라는 의미이다.

여기 본문에 나타난 카타르티조란 말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 하고 있던 일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그물을 치고 있었다"(마 4:21). 갈라디아서 6:1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권고를 하기 위해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형제들아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들을 바로잡고 ...". 그러므로 이 말은 히브리의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 적용되어야 합당하다. 그들은 복음을 믿은 후에 유대인들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너무나 쓰라린 박해를 받았으므로 그들의 마음은 이완되었고 심지어 배교에 대하여 경고받아여만 했다(히 4:1; 16:11, 12, 10:23 등).

우리가 강해를 시작하며서 제시한 대로, 이 기도는 교리의 가르침을 전부 모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이 앞장의 권고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비틀거리고 실패하였으므로(히 12:12) 사도는 여기에서 그들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드리고 있다.

사전에서는 여기에서 온전케 하사라고 번역된 카타르티조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탈구된 뼈를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슬픈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단절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손 이외에 아무 것도 그 손상된 것을 고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행하게 하시려고 우리의 모든 기능을 조정하시고, 우리가 그 기능을 필요로 할 때마다 바르게 인도하여 주실 것이다.

이 기도가 얼마나 포괄적인가를 주목해 보자.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가우지(Gouge)의 지적에 따르면, 이 기도는 "하나님의 편에서의 거룩한 모든 열매와, 인간의 편에서의 의의 모든 열매"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 광범위한 규칙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모든 영과 혼과 몸이 성결케 되고,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라고 요구하신다(신 6:5; 눅 10:27; 엡 5:15; 살전 5:23). "모든 선한 일에" 참으로 완전한 것이야말로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표준이다.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 절대적인 완전함을 이루기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성실성의 완전함을 요구하신다. 즉 정직하고 성실한 노력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우리의 정욕을 억제하고,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께 복종하며, 공평하고 보편적인 것에 순종하는 것이 영원히 우리가 행해야 할 의무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 없으므로 우리가 그것을 이행할 수 있도록 은혜를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드려야 한다.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일을 계속 진전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바울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자.♡ 그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엣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라고 말했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60